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은희 Aug 24. 2021

몸의 신호

온몸이 무겁다. 10kg 배낭은 평소보다 버거워지고 두통이 당연하듯 자리한다. 오한이 들기 시작한 몸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할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던 말을 가볍게 무시해준 나의 몸은 40도 중반을 웃도는 인도 날씨에 냉방병이 걸려버렸다. 조드푸르에서 델리로 향하던 슬리핑 버스, 그러니까 그렇게나 추웠는데 최대한 패딩이나 침낭을 꺼냈어야지 그놈의 귀찮음이 뭔지. 동행들에게 피해를 준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하필 그날 저녁 또다시 15시간을 이동해야만 했으니 미안함은 배가 될 뿐이었다. 최대한 껴입을 수 있을 만큼 껴입고 버스에 올라탔다.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동행들에게 애써 웃으며, 더는 피해를 용납 못 하니 꼭 나아야 한다며 스스로에게 짧게 협박을 하고는 까무룩 잠에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 몸에 매우 둔감한 편이었다. 열이 올라도 방치해두다 40도 가까이 올라가는 일은 자주 있었고, 배가 아파도 도대체 어떤 것 때문에 아픈지도 잘 모를 정도였다. 배가 고파 아픈가 해서 무언가 배불리 먹다가 더 아파지고 나서야 배고파서가 아니란 걸 깨달으니 원. 우리 몸은 솔직하다.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우리는 몸을 통해 신호를 보낸다. 배가 아프다던가 머리가 아프다던가, 어떠한 통증을 유발해 신호를 보내고 우리는 그 신호를 받고 병원을 가던가 약을 먹는 등 건강을 돌본다. 몸을 통한 신호는 건강뿐 아니라 마음에 이상이 있을 때도 발생한다. 단, 건강과 다른 점이라면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은 통증을 유발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몸에 힘이 없다든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등 무심코 지나갈 수 있을 만한 작은 신호를 보낸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아챌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조금도 못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살아가면서 애써오는 삶의 순위에 ‘나’에 대한 순위는 저 멀리 밀려있는 것처럼, 나는 나에게 꽤 무관심한 편이었다.


-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한 별다를 것 없던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어 습관처럼 출근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팀장님이 부르시더니 상담실로 가서 상담을 받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상담이라니, 회사에 다닌 지 1년이 넘었건만 상담실이 존재하는지 그날 처음 알았다.


“은희 씨, 이 정도 수치면 우울증 초기랑 비슷한 수치예요.”


정말 별다를 것 없는 똑같은 날이었다. 상담받고 오라는 팀장님의 말에 그저 잠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뻤을 뿐이었다. 그저 남들 다 하는 상담인데 내가 제일 먼저 가는구나라는 그런 생각뿐이었다. 한 달 전쯤인가 진행했던 스트레스 검사에 대한 상담인 줄 어찌 알았겠나. 아침까지만 해도 처음 알게 된 상담실이라는 작은 방 안에서 처음 뵙는 상담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더더욱 몰랐던, 그런 날이었다. 그렇구나. 족히 몇백 명은 될 이 회사 안에서 내 점수가 제일 높았구나. 살면서 1등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이렇게 해보는구나.

언제부터였을까. 출근길 버스 안에서 죽지 않을 정도로만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날부터일까, 어느 순간부터 주말만 되면 밥도 거르고 잠만 자기 시작했을 때였을까, 그러다 늦은 밤에 잠에서 깨면 그 적막감에 숨이 조여오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까. 그도 아니면 야근이 끝나고 퇴근하던 어느 날, 아무도 없는 버스 안에서 가방에 있던 빵을 먹으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던 그날부터였을까.


생각은 그리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그동안 수없이 몸이 작은 신호들을 보내며 대화를 청했음에도, 운 좋게 더 심해지기 전에 타인을 통해 몸의 이상을 알아챘음에도 언제나처럼 나는 귀를 닫았다. 그때의 나에겐 우울증보다 당장 이번 달 내야 할 월세가 더 중요했고, 상담받은 그날 이후도 똑같은 생활만 이어졌다. 전과 다름없이 출근길에 매번 사고가 나길 바랐고,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온종일 잠을 청했으며,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가끔은 이대로 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다, 어차피 죽을 자신도 없는 나라는 걸 깨닫고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나를 돌보는 일’이다. 우리는 이기적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기적인 게 정말 나쁜 것일까 싶다. 남에게 큰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몸이 고통을 호소할 때 오히려 약을 더 멀리하는 편이었다. 약을 자주 먹으면 내성이 생긴다고 말하며 웬만하면 약을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실은 알고 있었다. 고작 한 달에 약 몇 번 먹는다고 내성이 생기지 않을 것인지와 진실은 그저 이 정도 아픈 거로 유난 떤다며 남들에게 비난받을까 두려워서였다. 참을 수 있을 만큼 참고 나서야 속으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을 때 겨우겨우 약 한 알을 먹고 고통을 진정시켰다. 정말 미련한 짓이었다. 현실은 아무도 나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고 비난할 사람들은 내가 조금 아프든 많이 아프든 비난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내 고통은 내가 알아주지 않는 이상 영원히 어둠 속에 갇혀 크기만 키워갈 뿐이다. 그러니 이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 조금은 더 나를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자신만의 삶의 순위에 1위는 나를 위해 자리를 비워둬야 하지 않을까. 배가 아파져 오기 시작하면 약을 먹고, 눈물이 나면 울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내가 나에게 보내는 대화를 하나씩 받아들이면, 그러면 어쩌면 나는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요즘 들어 버스를 타며 출근할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24살의 내가 또래의 여행자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25살의 내가 홀로 이집트행 비행기를 오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26살의 내가 마침내 끊임없이 청해오던 나와의 대화에 대답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뭐, 별다를 것 없는 생활만 이어졌겠지 싶다. 그래도 다행히 지금은 냉정 관계였던 나와의 대화가 퍽 만족스러웠는지 버스 사고가 나길 바라진 않는다. 가끔 심각한 자연재해 때문에 모두가 하루 정도 출근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길 바라지만 말이다. (물론 누구에게도 피해가 없길 바라지만 그런 자연재해는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일하기 싫은 자의 작은 발악일 뿐이다.) 아무튼, 오늘은 자기 전 내가 먼저 나에게 대화를 시도해봐야겠다. 똑똑- 저기요, 잘 지내시는지요?





해당 글은 일간 문학지 '어느 저자'에서 '은희'로 활동하며 발행한 글입니다.

브런치에 '어느 저자'를 검색하시면 다양한 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가의 이전글 맥주 한잔 하실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