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개구리 Aug 20. 2020

더불어 함께...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늦은 밤 전화가 왔다.

조금은 취기 어린 목소리, 예전에 다니던 회사 상사였다.

평소에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고 요즘은 주로 애경사에 관한 통지를 받는 전화라서 누가 상을 당했나 하며 전화를 받았다. 또 다른 동료와 거래처 사장이던 셋의 만남이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 얘기가 나오며 다들 보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거래처 사장과는 지금까지도 일이 연결되어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이다.


보던 TV를 마저 보고 있는데 또 전화벨이 울린다. 그 사이 시간은 거의 밤 1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지금 나오라는 거다.

연휴기간이라 집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엉망인 상태인데 그 시간에 씻고 차를 빼서 나가기가 너무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성격과 맞지 않지만 못 나간다고 단칼에 자르고 말았다.

차를 집 앞에 대겠다는 둥 장소를 집 근처로 옮기겠다는 둥 여러 제안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술도 못 먹는데 술이 거나하게 들어간 세 남자와의 만남은 뻔한 거란 계산이 앞섰다.


전화를 끊고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내 젊음과 함께한 그곳에서의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잘 나가던 대기업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 전공과 같은 업무를 하는 자그만 회사로 자리를 옮겨 졸업 때까지만 근무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일이 재미있었고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처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꽤 오랜 시간을 몸담았던 곳이다. 회사는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서로 아끼는 마음이 컸던 곳이다.

전 직원 MT로 제주도를 가기도 했었고 간부직원 LT로 홍콩, 마카오, 태국 등을 가기도 했었다.

미술 교과서 교육부 검정 신청에서 중. 고 모두 합격하여 포상 휴가로 유럽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부서 MT 때도 다른 부서는 국내 여행지를 갔지만 우리 부서는 사이판에 갔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도 열심히 했고 놀기도 열심히 했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었다.


회사 창업자는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작년 봄, 다시 못 올 먼길을 떠나셨다.

고1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학창 시절을 보내셨던 선생님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생활에 솔선수범이셨다.

그래서 직원들의 애경사 특히 애사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선친 장례식 때도 총무과에서 제일 먼저 달려와 부족한 것이 무언가 챙겼던 기억이 난다.

직원들도 그런 정서를 따라 회사를 그만둔 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그 마음 씀씀이가 변함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아직도 가족 같은 분위기로 챙기려 한다.


국어 과목뿐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셨던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한때는 선생님이었고 한때는 회사 대표였던 분을 떠올리며 가까이 있는 사람끼리 아끼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는 것은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의점 데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