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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타임조아나 Nov 17. 2020

어찌되었든, '사람'과 함께 걷는 길

산티아고 순례기 : Day 5

Day 5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바에 도착하기 전까지 약 한 시간 정도 혼자 걸었다. 가파른 언덕을 두 개 정도 넘어야 했는데 목감기 비슷한 것이 걸려서 겨우겨우 몸을 움직였다. 바에 도착해 문을 열자 담배냄새와 함께 온기가 훅-하고 밀려왔다.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 사이에서 커피를 홀짝인 후 바게트를 베어 물었다. 바에서 주문을 받는 아저씨에게 간단한 스페인어를 몇 가지 배우고 다시 길을 떠났다. 


  여러 가지 언어가 한꺼번에 들린다. 스페인어도 들렸다가 영어도 들렸다가 종종 이탈리아어도 들린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언어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비로소 내가 다른 나라에, 그것도 40일 가까이 걸어야 끝나는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시큼한 냄새가 곳곳에, 심지어 공기에도 눅눅하게 배어있다. 






왼쪽부터 패트리, 멜, 팀과 웬디



  어제는 대도시 팜플로나를 지나 레이나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다 함께 장을 봐서 파스타를 만들어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런던에서 약사를 한다는 패트리가 까미노 가족에 합류했고 부모님과 같은 팀과 웬디가 중간 마을에서 머문다고 했다. 각자의 리듬으로 걷는 까미노다. 이 노부부는 그들의 둘째와 같은 나이인 나를 살뜰히 보살펴주셨다. 하루는 성당에 앉아 이야기를 함참 나누기도 했다.   



"인생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성공한 이야기든, 그렇지 못한 이야기든. 그 많은 이야기들이 가끔 저를 따라다니는 것 같아요."


"조애나, 인생은 살아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렇기에 전문가라고 할 것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어. 너무 큰 고민과 걱정은 오히려 너에게 독이 될 거야. 무엇이든 하다 보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끄는 곳이 있을 거야."



  웬디가 안아주며 볼에 작은 뽀뽀를 해주었고, 팀이 '오, 내 한국인 작은딸!' 하고 두 손을 붙잡는 바람에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졌다. 넌 어딜 가든 잘할 거야, 하며 도닥여주었다. 




달라진 시차를 두고 토론을 벌이고 있는 팀과 브랜든
보고 싶은 까미노 패밀리. 다들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까미노를 걸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이 넓은 세상에서 스페인이란 나라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2016년, 그것도 9월에 함께 걷게 되다니. 수많은 시간의 그래표의 접점에서 이런 모습으로 스치게 될 것이라고, 우리는 상상이나 했을까?


  가장 인상에 남았던 가족은 갓 100일을 넘긴 아기와 함께 걷는 젊은 부부였다.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는 갈렌시아는 눈이 맑고 파랗다. 내가 한번 안아보았다가 울상이 되는 바람에 얼른 아빠에게 넘겨주었다.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니 그들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아내가 샤워를 하거나 자신의 일을 해야 할 때, 자신이 아이를 돌보면 되고 아직 어려 따로 이유식을 준비할 필요 없이 모유수유를 하면 되니 생각보다 편하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난리가 났겠지. 

  

  까미노에는 혼자 걷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모님을 모시고 걷는 사람들도 많다. 이틀 전 한 마을에서 만난 데이비드도 그중에 하나였다. 올해 서른이라는 데이비드는 영국에서 온 배우다. 5년 전, 이 길을 혼자 걸었고 지금은 엄마 데보라와 함께 걷는다.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같이 강가에 가보지 않겠냐는 말에 쫄래쫄래 따라가 유명한 야경도 보고 맥주도 한 잔 더 얻어마셨다.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배우가 되었지만 아직도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서른에도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   


 

배우인 데이비드. 





















덧글 


+ 멜에게 문자가 왔다. 잘 지내냐는 안부와 함께 네 생각이 났다며 동영상 하나를 보내주었다. 로스 아크로스 Los Arcross로 가는 길에 거리의 악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덩굴에 달린 빨간 딸기를 따먹다가 신이 나서 춤을 추는 나의 모습을 몰래 녹화해놓았다. '나 왜 이랬지?' 하고 문자를 보내자 멜이 아무렇지 않게 답장을 보냈다. '인생에 취한 거지, 아니면 우리가 따먹었던 딸기에 취했거나.' 


  보고 싶은 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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