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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Aug 16. 2021

그래서 나는 반찬가게로 간다

나이 60 이후 또래 친구들간에 제일 눈에 띄는 변화는 밥하기가 싫어진 거다. 계절적으론 여름에 증세가 극심해진다. 끓이고 지지고 볶아대면 실내 온도만 상승하는 게 아니다. 가스렌지 앞 작업으로 체온이 오르고 두통이 발생한다.


밥하기 싫은 병 환자인 중년 여성들이 자구책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걸 비난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이전 패키지 여행 다니던 시절, 아침마다 호텔의 수라상급(?,) 뷔페로 회의호식하던 시절을 마냥 그리워한다.  


,너나 없이 척추관협착증이나 무릎관절통을 달고 사는 처지다. 이걸 뻔히 알면서도 내몰라라하는 삼식이 남편이  반찬 투정을 늘어놓으면 속이 뒤틀려 혈압이 올라간다고 한숨쉬는 그녀들. 징징대는 남편에게 냅다 호통을 쳤더니  "마누라 독재에 시달리느니 가출하겠다"고 하더라나.


얼음 띄운 커피를 홀짝대며 한 친구가 말한다.  "정말이지 이놈의 전업주부란 직업은  정년퇴직도 없냐?"


그래~서 우린 서슴없이 동네 반찬가게로 달려갔다. 오이소박이, 황태뭇국이랑 꽈리고추장조림을 서로 현관앞에 배달해주며 나눠먹기 시작했다.  


멸치볶음이랑 낙지젓갈 같은 밑반찬 뿐이 아니다. 손이 많이 가는 호박나물, 깻잎볶음,취나물볶음, 콩나물무침이랑 미역국, 오징어볶음까지 조달이 가능하다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어떻게든 집 나간 입맛을 돌아오게 해야만 팬데믹 시국에 면역력을 지킬 수 있을 거니까.


남편들도 대개 군말없이 적응하기 시작했다. 삼시세끼를 차려주며 생색내거나 찡그린 아내 얼굴을 보기 보다는 반찬가게표 음식을 먹는 게 명랑한 멘탈 유지에 도움이 될 거니까. 입맛대로 반찬 주문도 가능하다는 잇점까지 있다.


문제는 플라스틱 포장재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죄의식. 집근처에 오후 4시에 문을 여는 번개 반찬가게가 있다.  플라스틱 포장재 대신 비닐 포장 소량 판매 위주다. 비닐 포장이라고 죄의식을 없애주진 못하지만 그래도 훨씬 마음이 가볍다.


무더위를  핑계로 반찬가게 출입을  시도때도없이 한 여름이 지나간다. 그럼 가을엔? 우린 집밥의 정의를 살짝 확대할 작정이다. 집에서 먹으면 뭐든 집밥이라고 박박 우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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