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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Sep 15. 2021

추석은 장보기로 시작되는 게 아니거든

추석 준비는 장보기부터라고?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우리 동네 미용실은 추석 2주 전부터 시즌 시작이다. 요양보호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지팡이를 짚고 미용실에 오는 할머니들을 비롯, 중·노년 단골들이 물밀 듯 몰려온다. 나랑 동갑인 원장 옥희씨는 손님들을 맞느라, 아니 방역 기준 상 실내 인원을 맞추느라 눈코 뜰 사이가 없다.


“뭐니 뭐니 해도 퍼머부터 해야 추석 맞을 기분이 되더라고.” 동네 친구들의 이구동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추석이나 설은 이 나라 주부에게 고강도 전투기간이기 때문일 터. 음식 준비 뿐만이 아니다. 가족친지간 발생 가능한 크고 작은 충돌을 미연에 차단하는 섬세한 감정 노동까지 포함해서다. 마치 아침마다 화장하고 정장을 장착하며 출근 전투 모드로 자동 전환하는 직장인들처럼 살짝 비장한 명절용 마음가짐이다.


게다가 최근 조금 완화된 방역으로 8명 가족모임도 가능해지지 않았는가. 나 역시 오랜만에 찾아뵙는 9순 친정엄마께 최상의 미모를 보여드려야 한다. 딸로서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야말로 효도의 진수!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내가 체득한 진리 중 하나다.


평택의 원룸에서 고양이 ‘아롱’과 살며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에게도 명랑하고 잘 노는 엄마를 보여주는 것이 그의 심기 안정에 긴요하다. 미용실 고객들의 마음도 나와 똑 같을 것이다. 헤어 스타일링으로 가다듬은 미모에 어깨와 가슴이 쫙 펴지는 느낌이다. 자, 이제 장보기랑 추석맞이 대청소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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