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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Sep 12. 2021

평광동 사과골짜기 통신

사계절 중 가을을 편애하던 친구들 중 무려 반 이상이 개종, 봄 숭배로 갈아탔다. 나이 60 이후의 일이다.


"첫 가을 냄새에 왜 이렇게 가슴이 철렁하지?  쾌적하긴 한데  뭔가 불길하다니까." 한 친구의 말이다. 왜 아니겠나? 가을은 풍성하되 스러짐과 몰락을 예보한다. 나날이 진행중인 우리의 노화와 죽음에 대한 서늘한 은유. 채팅방에 가을 우울증과 불면을 하소연하며 서로 위로하느라 바쁜 시즌이기도  하다.


아침 밥을 짓기 전 어스름, 늦잠꾸러기 남편을 내버려둔채 골짜기 산길로 나선다. 대구 사과 원산지 평광동답게 사과밭이 길 양쪽에  끝없이 이어진다. 손을 내밀어 사과나무 가지와 악수를 한다.


"고마워, 이쁜 친구들. 너희들은 여름내내 할일을 다했구나. 난 좀 그렇지 못했어."


반성문을 써가며 볼빨간 사과알들을 치켜세운다. 추석  출하 목표는 무난히 달성될 것 같은 어여쁜 색감의 홍로 계열 종이다. 11월 중순이 넘어야 제맛을 내는 부사는 비싸게 팔리지만 색감이 많이 떨어진다.


햇살이 골짜기로 퍼진다. 아침이다. 새들, 사과나무들, 풀벌레들이 일제히 깨어나는 것 같다. 모두에게 소리쳐 아침인사를 한다. "굿 모오닝~~"


개울 저편 풀숲에서 작은 새가 포로록 날아오른다. 깜짝 놀랬나부다. "미안, 미안! 교양없는 할머니를 용서해줘."


되돌아 집으로 향한다. 오늘 아침은 햄치즈에그샌드위치? 아님 누룽지에 낙지젓갈이랑 우엉조림? 배가 막 고파지고 있다. 오늘은 이불을 털어 가을볕에 꽝꽝 말려야지. 날마다 기쁘게 살기, 내 목표는 오늘도 달성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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