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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Sep 09. 2021

마당냥이와의 우정

장애묘 ‘세발이’가 대구 평광동 집에 나타난 건 지난 해 겨울이다. 안질을 앓고 있던 눈과 꺼칠한 털, 절룩이던 첫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던 추운 오후였다.


사람을 극심하게 경계하면서도 사료 접시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어린 세발이. 왼쪽 앞다리가 없는 ‘삼륜구동’ 그녀는 그 후 우리 집 마당냥이 중 하나가 되기로 한 모양이다. 이 친구의 거리두기 원칙을 존중하면서 그가 사람에게 입었을지 모를 상처에 용서를 빌었다.


올해 봄 한 차례의 출산을 치러내기까지 한 세발이. 아기 냥이들을 어느덧 독립시킨 모양으로 요즘은 다시 혼자가 됐다. 경계심도 살짝 풀린 듯, 먼저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다. 괜찮은 신뢰 구축 과정이다.


어린 날 사고를 당한 기억은 깊은 곳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라진 왼발에 대한 아픔은 그의 눈빛에 없다. 조금 뒤뚱거리지만 고등어 등무늬 패션의 그는  잘 달리고 잘 걷고 잘 먹는다.


아픈 기억과 상처로부터 끝내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뇌를 생각해본다. 어제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극심한 에너지 낭비를 해대는 게 우리의 생애가 아닌가. 내일을 앞당겨 걱정하지 않는 대범함이 세발이에겐 있다. 닥치면 그저 겪어낼 뿐 투덜대지 않는다. 그의 왼발이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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