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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Oct 16. 2021

가보고 싶다, 명랑한 공동묘지


 오래 알고 지낸 어른이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다. 영정 속 그분은 환하게 웃고 계시는데, 검은 수트를 차려입은 이들은 최고로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다. 병상에 누워 수년을 고생하셨던 고인께 흰 국화 한 송이를 드린다. 80여 년 갇혀있던 육신으로부터 마침내 놓여난 날이 아닌가, 나는 고요히 ‘해방을 축하드려요’란 메시지를 날린다.


 장례식장의 검정 휘장과 블랙 인테리어를 나는 반대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 슬픈 건 우리 사정이 아닐까. 그는 이미 이곳을 떠나 ‘천개의 바람’이 되었을 테니. 지상의 괴로움과 즐거움으로부터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극적 반전! 죽음은 그런 멋진 ‘옮겨감’이기도 하다.


 루마니아 북부 서푼차 마을에 있다는 ‘명랑한 공동묘지 (Merry Cemetery)’가 떠오른다. 이곳 600여 기의 무덤 중에 비싼 대리석이나 돌로 만든 비석은 없다고 한다. 대신 컬러풀한 나무 십자가에 고인의 모습을 유머 섞인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다나. 그리곤 죽은 이의 직업이나 생애를 담은 몇 마디를 써넣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나는 두 살 때 집 앞을 지난 미친 놈이 운전한 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어. 너희들 모두 차 조심해라.” “나, 드미트리는 45년 간 투이카를 사랑했어. 그녀는 내게 기쁨과 고통과 눈물을 주었지. 결국 투이카는 나를 파멸시켰고 죽음으로 내몰았어. 어쨌든 나는 그녀의 발밑에 묻혔으니 이번 생은 그리 나쁘지 않았어.” “나는 이 세상을 즐겁게 살다 간다. 나는 형제들과 놀기를 좋아했어. 형제들이 노래 부를 때 나는 춤을 췄어. 내가 결혼하려고 할 때 느닷없이 죽음이 나를 데려갔어. 사랑하는 엄마, 아빠, 나 대신 형제들로부터 위안을 받으세요.”


 죽음을 둘러싼 우울함을 재미있는 그림과 글로 바꾼 이 공동묘지는 어느덧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나. 세상 떠난 이들의 생애를 유쾌하게 기억하도록 돕는 공간. 늘어나는 방문자들에게 뜻밖의 영감을 준다고 한다.


 한 생애의 해피 엔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오늘의 삶이 유쾌한 여정이어야 할 터. 잘 살아낸 하루하루가 행복한 잠으로 이어지듯이 말이다.


 조문을 마치고 거리로 나와 버스를 기다린다. 오후 햇살 아래 창경궁 담장 안의 단풍이 눈부시다. 그래, 우선 이 멋진 가을날을 듬뿍 누려야겠어. 활짝 웃는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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