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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Oct 21. 2021

지금 네 나이가 좋을 때다

껍질 벗긴 토란대를  쪼개 말리는 엄마

 골짜기 친구들이 날마다 우리 집에 온다. 뭔가를 들고 온다. 잔뜩 약 오른 끝물 풋고추랑 애호박, 표고버섯 한 소쿠리다. 텃밭에서 기른 붉은 고추를 갈아 넣고 배추 뽑아 담가온 특급 김치도 슬쩍 현관에 놓고 간다.


 전어회 무침 한 접시를 들고 온 이웃은 우리 친정엄마 옆에 바싹 다가앉아 말한다. “우리 엄마도 살아계셨으면 딱 95세예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엄마는 애매한 미소를 띄고 그녀의 손을 맞잡는다. 갑자기 울음보가 터진 이웃.


 “우리 엄마한테 너무 못해 드려서 너무 후회가 돼요.” 울 엄마를 보니 자기 친정엄마 생각이 간절해진 거다. 엄마 나이 회갑이 되기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날 줄이야. 미처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한참 어린 남매 키우고 칼국수집 하느라 하도 정신이 없어 아픈 친정엄마 챙길 여유가 없을 무렵이었단다.


 “갈비집 한 번도 모시고 가질 못했어요. 그렇게 일찍 떠나실 줄 알았다면 장사를 하루 집어치우고라도 엄마랑 외식하러 가는 건데.” 그래서 나이 먹을수록 더, 일찍 떠난 친정엄마가 그립고 야속하기까지 하다고. ”왜 남들 다 하는 효도 한 번 할 기회를 안 주냐는 거예요. 외동딸을 불효녀로 만들어놓고 떠나면 나는 어쩌라고요.“


 집안 형편 때문에 남동생만 대학에 보내준 엄마를 원망한 적도 많았다는 그녀. 그렇기에 더 미안함을 만회할 기회가 영영 사라진 게 한이 됐다는 거다. 눈물콧물을 훔치고 난 그녀의 결론은 명쾌하다. 친정엄마한테 지금 맛난 거 많이 사드리고, 드라이브 시켜드리고 용돈 많이 드리라는 것.


 흠, 친정엄마한테 효도할 날들이 남부럽잖게 많은 내 경우는 어떤지 되돌아본다. 대구 골짜기 딸네 집에 ‘한달 살이’하러 온 엄마, “엄마, 쉬세요!”란 말을 싫어하는 그녀답게 일감을 찾아 집 안팎을 뒤진다. 단순반복 작업에 최적화된  온갖 텃밭 일을 반긴다. 들깨 털고 잡티 없애기, 마늘 쪼개서 심기, 토란 캐고 토란대 쪼개 널기에 엄마는 신이 난다. 모기와 풀벌레에 물려 벅벅 긁어대면서도 지칠 줄 모르신다.


 집안에도 일감은 풍부하다. 가을 햇볕이 아깝다며 날마다 이불이랑 요를 빨랫줄에 널어 고슬하게 말린다. 돈 안드는 태양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생활의 지혜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콩나물이랑 멸치 다듬기, 마른 빨래 개켜 서랍에 넣기는 거의 엄마 전담이다. 부엌일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게 하는 게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랬지. 부추 겉절이나 호박잎 쌈 만들기도 엄마께 부탁드린다.


 끼니마다 따뜻한 밥과 국을 대령하는 건 내 기쁨이다. 집 안팎을 들락날락하느라 밥맛이 좋아진 엄마는 참 맛있게 드신다. 삼시세끼 따뜻한 밥 먹여줘 고맙고 미안하다는 인사까지 챙긴다.


 95세 엄마의 일상을 지켜보는 건 내 노년의 선행 학습이기도 하다. 청각 장애를 안고 살아야하는 하루하루가 어찌 고달프지 않을까마는 엄마는 씩씩하게 동네를 걷고 실내 체조를 거르지 않는다. 소식하는 습관은 그녀의 건강 비결 중의 하나.


 “지금이 좋을 때다!” 엄마가 내게 자주 해주는 말이다. 95세 엄마 덕분에 67세 딸인 나는 젊은 척, 활기찬 척, ‘좋은 오늘’을 살고 있다. 엄마께도 지금이 좋은 하루하루였으면 좋겠다. 바람에 촛불이 꺼지듯, 자다가 고통 없이 세상 떠나는 게 엄마의 목표. 그날을 향한 엄마의 성실한 완주를 격하게 지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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