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결혼한 독신주의자?

by B급할미


퇴직한 삼식씨에겐 마당의 감따기도 즐거운 놀이다.

오늘도 뚝딱뚝딱 바빠 죽는 남편. 요즘 부쩍 공구나 장비 쇼핑에 열을 올린다. 퇴직 후 심리적 공백을 메우려는 안간힘일까? 고향 경주 근처에 작은 산을 사더니 움막을 고쳐가며 자연인 놀이까지 신나게 벌여놓는 중이다.


남편이 사는 대구 평광 골짜기집에 머물 때마다 내 눈에 잡동사니일 뿐인 공구나 장비가 쌓여가는 집안팍 풍경에 속수무책인 나. 내 혈압이 오르건 말건 남편은 태연자약하다. 하나같이 그에겐 소중한 물건들일테니.


내가 퇴직 후 대구집과 서울집을 오가는 '롱디'결혼 생활자가 된 배경엔 남편에게 필요한 자기만의 공간을 존중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서울 아파트가 내 공간이듯이 대구집은 그의 취향과 생각대로 만드는 걸 적극 지지한 거다.


이토록 '숭고한' 내 뜻에 부응한 건가?그의 쇼핑 행각과 정리 못하고 늘어놓는 어질르기 신공에 호딩 기질까지 어울려 어느덧 물건들은 안방과 거실, 현관과 마당까지 넘실댄다. 드디어 이웃들까지 혀를 차기에 이르렀다.


웬만하면 치우고 버리자는 내 읍소는 한낱 잔소리 폭탄으로 들리는 모양. 말없이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이쯤되면 정리 전문가에게 의뢰를 해야하지 않을까. 역시 못들은 척 묵묵부답이다.


뚱한 얼굴로 마주앉아 밥을 먹고 해질녁 골짜기 한바퀴에 나선다. 별보기를 좋아하는 남편, 천진난만한 얼굴로 내게 초저녁 달 옆 목성을 가리킨다. "저 쪽 금성도 보이죠?" 내가 어이없어 하건 말건 그는 별들과 달들이 예쁘고 반가워 함박웃음이다.


흠, 누군가가 행복하다면 이렇게 뒤죽박죽인채 계속 지낼 수 밖에 없는 건가? 이해하기 힘든 남편의 생활방식이 굳이 나를 적극적으로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니란 점만이 위로가 될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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