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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Nov 16. 2021

결혼 아니고 딸의 독립기념일!

 서른 일곱살 딸이 집을 떠났다. 시집을 가는 대신 독립인이 되기로 결정한  그녀. 직장 가까운 집을 찾아 삼만리를 헤매더니 수서역 근처 오래된 아파트를 얻었다. 반전세 17평이 2억 보증금에 월세 37만원. 모아둔 독립자금 1억에 아부지 찬스로 5천만원. 거기에 전세 대출 5천만원까지 끌어모았다나.


 딸의 두 절친까지 달려와 함께 이삿짐을  푸느라 떠들쎡한 주말 오후. 입주는 집수리 중 발생한 수도관 누수가 아직 해결 못한 채로 이뤄졌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심란한 장면이었지만 그녀들의 명랑한 음성은 새 출발의 좋은 조짐으로 들렸다. 아파트를 얻느라 빈털털이가 됐다며 딸은 엄마 집 부엌에서 놀고 있는 밥그릇, 냄비, 숟가락에 키친타올이랑 비누접시까지 당분간 뭐든 빼돌리겠단다.


 독립기념일 세레모니가 없을 순 없지. 양꼬치맥에 전원 합의. 동네 양꼬치집에서 양꼬치를 지글지글 구우며 맥주를 들이켰다.


 언제가 되든 웃는 얼굴로 딸과 헤어지고 싶었던 내 꿈은 이뤄졌다.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의 인생에 최소개입 원칙을 굳건히 지켜온 나. 그동안 두 30대 자식들과 얼굴 붉힐 일이 많지 않았던 걸 내깐엔 성공으로 여긴다.


 하지만 스멀스멀 다가오는 이 어둠의 그림자는 뭐지? 제법 씩씩한 척 해도 웬지 버림받은  느낌! 홀로 내팽개쳐진 듯 서글프다. 게다가 이 거대 IT 문명 속 홀로 각종 모바일 기기에 대처하기엔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여성 노인의 현실, 실로 엄혹하다. 그간 해결사 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해 왔었구나. 뼈아프게 실감한다.


 한숨을 내쉬곤 내 주위의 솔로 친구들을 떠올린다. 외로움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녀들이 갑자기 위대해 보인다.


 이제부턴 이 선배님들을 모시고 홀로살이 지혜와 기술을 전수받아야겠다.  딸의 독립은 엄마인 나의 독립이기도 해야 하니까. 게다가 남편은 대구집에, 아들은 평택 원룸에 살고 있는 처지. 바야흐로 우린 4명이 뿔뿔이 흩어져 가족을 이루는 '롱디' 패밀리 모드에 돌입했다.


 결혼 37년 반 만에 독거노인이 된 오늘은 내 싱글 시대의 첫날!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시작되는 건가. 야호! 이 외롭고 자유로운 날들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거지?


 어쨌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행복하기, 롱디 일가족에게 주어진 공통 숙제다.  '뿔뿔이 가족' 모두가 독립만세 삼창을 외치며 양꼬치맥 파티는 무르익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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