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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Nov 23. 2021

어질리우스 할배의 일격

퇴직 후 가열차게 사들인 공구와 장비로 집안팍을 마구 어질러대 내 염장을 지르는 남편. 오늘은 망원경을 하나 꺼내 마당 풀밭에 늘어놓는다. 그의 오만가지 취미 중 하나인 하늘멍을 때릴 참인가.


 미세먼지로 뿌연 날씨는 아랑곳 없는 모양. 태양의 흑점들을 관찰한다나 어쩐다나. 오후 내내 친애하는 망원경 옆에서 꼼짝 하지 않는다. "저녁밥 먹어요"라는 내 외침에 마지못해 집안으로 들어온다.


 돈 많기로 손꼽히는 월드 클라스 부자들이 뻐기며 탄다는 우주 여행선이 최근 화제가 아니던가. "부자들은 왜 그리 용감하죠? 우주 여행이 아무리 멋지다해도 폭발할 지도 모르잖아요. 난 무서워서 못 탈 것 같아."


 겁 많은 내 말에 하하 웃던 남편, 불쑥 말한다. "이 지구 자체가 이미 거대한 우주선이 아니겠소?  망원경은 우주선 지구호에 난 작은 창문같은 거고. 그러니까 우린 날마다 끝없는 우주 공간 속을 비행 중인 거지."


 윽, 모처럼 쏘아올린 주옥같은 한마디! 밤이고 낮이고 들여다본 우주 공간 속 한점 먼지인 인간 존재의  의미를 철학하고 계셨던가. 모처럼 그가 괜찮아 보이는 순간이다. 좋아.  이 기념으로 앞으로 일주일 동안 그가 어질어대건 말건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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