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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Dec 19. 2021

내게 '올해의 친구'는 누구지?

미국의 TIME 잡지가 '올해의 인물'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를 선정했단다. 뭐, 엄청나게 유명하고 돈 많은 사람이지만 별 감흥이 없다. 내게 중요한 건 지금 내 곁에 있는 ‘올해의 친구’가 아닐까. 새로 사귄 친구거나 한 해 동안 유난히 친해져 내게 영감을 준 사람 말이다. 남과 조율할 필요가 없으니 당장 뽑기로 한다.


 주변 인물들을 머릿속으로 검색해본다. 이 친구가 좋을까? 아님 그 친구? 앗, 근데 그게 아니다. 올해 내 베프는 바로 <유튜브>였다. 팬데믹으로 위축된 사회생활이 유튜브 속 친구들을 사귀게 밀어준 덕분이기도 하다.


유튜브 속 인간계는 놀랍다. 젊은 나이에 어쩌면 저토록 많은 지식과 명쾌한 안목을 장착했는지, 감탄 또 감탄을 하게 만드는 조승연, 김지윤 같은 학식 만렙 유튜버들! 요리 고수 왕언니들이 딸이나 손주의 도움으로 채널을 열어 십만이 넘는 구독자를 자랑하는 것도 참 보기 좋다. 천안에서 블루베리를 키우는 크리에이터가 비닐하우스 짓는 법을 시연하는 채널 속 아내와 나누는 대화에 배꼽이 빠질 뻔하기도 한다. 길냥이 돌보미들의 활약상을 담은 채널도 따뜻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오즈 야스지로(1903-1963)라는 일본 영화 감독이 만든 <꽁치의 맛>을 알게 된 것도 유튜브 덕분이다. 일본 패전 후, 그리고 한국전쟁 무렵 일본의 사회상이나 가족 이야기, 심지어 집 내부 구조와 술집 안주 아이템들까지 디테일이 튼실하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거의 풍속 자료 기능까지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작품들을 만든 거장이다.


나이 65를 지나며 시력이 떨어진 뒤론 유튜브 속 오디오 북 카테고리가 또 얼마나 반가운지! ‘책 읽는 자작나무’같은 북튜버들은 거의 날마다 만나는 친구다.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완독을 못할 <총·균·쇠>나 <사피엔스>같이 거의 인생 숙제가 돼버린 책들을 잘근잘근 씹어주는 ‘일당백’ 채널도 너무 좋다. ‘구독’이랑 ‘좋아요’를 꾹꾹 누르고 댓글을 줄줄이 다는 이유다.


누군가는 유튜브를 잡동사니 쓰레기통이라고 부른다지. 그 속엔 분명 백해무익한 콘텐츠들이 있다. 유명인의 사생활을 털어 유명세와 돈을 얻으려는 이들의 더티 콘텐츠도 그 일부다. 이를 즐겨 찾는 마니아층이 적지 않기에 형성된 시장.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유튜브를 꺼버릴 수 있나? 방대한 전공 분야 지식과 자기만의 필살기를 선보이는 크리에이터들의 매력을 어찌 외면할 것인가. 황당한 극우와 극좌를 배제하면 다양한 스펙트럼의 관점과 지식과 통찰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시사 채널도 도움이 된다.


유튜브 속 생태계가 아름답고 선한 것들의 승리를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믿고 싶다. 땀 흘려 축적한 전문 지식과 통찰을 아낌없이 나누려는 이들의 선의가 넓고 깊은 울림을 갖게 될 것임을.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모여 이룩한 집단지성의 힘이 우리 사회를 더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고 있음을. 유튜브 속 고수들이 바로 그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이 아닌가.


각자 가진 소중한 것을 나눠 주고 있는 그들은 나중에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내가 살고 가서 이곳이 쬐끔 더 나은 세상이 되었다”고. 그렇다면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유튜버들의 지식과 안목을 조금이라도 나눠받은 덕분에 나도 쬐끔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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