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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Jan 22. 2022

세번째 30년은 각자 행복할 것!

 

함께 있어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듯 느껴진다면 조금 다르게 살아봐도 좋지 않을까?

서울과 대구 골짜기 집에 반반씩 사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가 늘어난다. 30대에서 50대 까지는 주말부부로 남편 없이 아이들 키우는 나를 가엾게 여기던 그녀들. 요즘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만 나이 들어 주말부부가 된다잖아? 나도 한 달에 보름씩 남편 없이 사는 게 소원이야.” 오잉!


 한 친구는, 퇴직한 뒤 주구장창 소파에 누워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똥배를 긁어대는 남편이 너무 짜증난다고 말한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괜히 점심 약속을 잡아 외출하는 버릇이 생긴 것도 집안을 어슬렁거리는 삼식이 꼴을 보기 싫어서란다.


 사실 나이 60 이후 또는 퇴직 후 커플의 유쾌한 공존은 쉽지 않다. 아들딸의 독립 또는 결혼과 함께 부부간 공동 관심사는 대폭 줄어들었다. 집에 함께 있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한지붕 별거’가 은근 많아지는 것도 추세라고 한다.


 경북 영천의 비어있는 고향집으로 올해 귀촌을 선언한 68세 남편을 어쩌면 좋겠냐고 물어온 친구가 있다. 그 남편은 퇴직 후 3년 동안 귀촌 교육을 받고 목공, 용접 기술까지 익혔다는 거다. “함께 가기 싫으면 그냥 서울에 살아라”고 말하는 남편, 고맙고 한편 섭섭했단다. 황혼 육아로 외손녀를 기르는 처지라 당장 남편의 고향집으로 따라갈 처지가 못 되는 까닭이다.


 이야기를 듣던 다른 친구는 ‘남편과 떨어져 살 절호의 기회’를 심히 부러워한다. “이혼이나 졸혼 같이 남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떨어져 살 명분이 생겼잖아. 밑반찬이나 챙겨 보내주면 나머지 시간은 완전 자유겠네. 정말 좋겠다.”


 돌아갈 고향집도 없고 자연인 로망을 실현할 모험심도 없는 남편의 삼시세끼 수발이 너무 힘들어 대책을 강구중이라는 그녀. 올해 ‘한달살기’여행을 지리산 근처 산청이나 남원으로 갈 거란다.


 그녀들은 내 반반살이 라이프스타일의 장단점을 묻는다. 나는 “만나면 반갑고 헤어질 때 후련하다”고 말해준다. 함께 있을 땐 남편에게 방을 치우라거나 인터넷 쇼핑 좀 그만 하라고 잔소리 폭탄을 투하해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떨어져 있을 땐 카톡으로 서로 건강을 걱정하고 덕담을 나누는 사이로 돌변하는 게 웃픈 현실.


 남편과의 슬기로운 거리두기는 우리 모두의 현안이다. ‘부부일심동체’라는 이데올로기를 더 이상 신봉하지 않기 때문일까. 육아와 생업에 몸과 마음을 갈아 넣은 협업의 시대를 대과 없이 끝낸 커플들, 이제 노년 삶의 질을 고민하고 모색하는 단계로 진입한 까닭이겠지.


 나도 자유롭고, 상대방도 자유로운 노년. 젖혀둔 옛 꿈을 한번 쯤 다시 따라가도 좋은 나이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남편이 영천 고향집으로 가 있는 동안, 친구는 요가를 배우고 스마트폰 잘 쓰기 공부를 할 예정이다. 딸에게 기차표 사달라는 부탁을 더 이상 하기 싫어서란다. 요가로 비틀어진 척추를 바로 잡아 허리 통증 없이 편한 잠을 자고 싶다는 그녀. 우리는 마구 격려와 응원을 했다.


 지리산 한달살이를 떠날 친구는 ‘아이패드로 그림그리기’란 ‘유튜브’ 강의를 챙겨보고 있단다. 지리산 둘레길 풍경과 여행 이야기를 자신의 블로그에 담는 게 목표. 자신의 새해 계획을 남편에게 넌지시 알렸다 그러자 맨날 뚱해 있던 남편이 그녀의 구상을 지지해줬다는 거다. 한 달 동안 혼자 있을 남편을 위해 몇 가지 간단한 요리 강습도 실시하기로 의논 중.


 “이제부터 사람 사는 것 같이 한번 살아볼 거야. 남편하고 떨어져 잘 살아 볼 거야. 우린 원래 자유로운 싱글이었잖아.” 다른 친구가 맞장구를 친다. “그래, 그리고 뭔가 새로운 걸 하나씩 배워서 지금보다 더 재밌게 살아야겠어.” 야심찬 각오다.


 치열하게 함께 한 결혼생활 30년은 이미 역사다. 이제부턴 조금 느슨한 결합 방식으로 전환하면 어떨까? 반(半) 싱글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금쪽같은 노년의 날들을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나 비방, 또는 피해의식에 젖어 낭비하고 싶지 않은 이들, ‘혼자만의 방’을 상호 인정하면서 가보는 거다. 서로의 작은 새 출발을 축복하고 응원하면서 세 번째 30년은 각자 스스로 행복해 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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