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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Feb 24. 2022

치킨집 사장님께 건배!

동네 주민 열전


동네 치킨집에 전화로 프라이드 윙을 주문한다. 배달비를 절약하기 위해 언제나처럼 20분 뒤 픽업하러 간다. 여사장님이 유난히 반가워한다.


 “저 내일 폐업해요. 하마터면 못 만날 뻔 했네요.” 헐, 장사가 그렇게 안 된 건가? 단골로서 살짝 책임감 섞인 죄책감이 드는 순간, 뜻밖에 환한 그녀의 웃음! 안심해도 좋다는 싸인이겠다.


 “가게 임대 계약이 끝나는 걸 계기로 삼았어요. 21년 장사를 놓기는 아깝지만 더 아까운 건 앞으로의 제 인생이더라고요. 지금 못 놓으면 더 나이 들어서 후회할 것 같아요.”


 “아니, 그럼 뭔가 멋진 계획이 있는 거 맞죠?” 내 질문에 계속 싱글거리는 그녀. “아무 계획이 없어요. 당분간 쉬면서 생각하려고요. 제 나이 예순 여덟인데 그냥 놀아볼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누가 아니래요? 마구 마구 놀아도 시비 걸 사람 하나도 없을 걸요.”


 열렬한 호응이 흐뭇한지, 그녀는 나를 의자에 앉힌다. “날마다 들어오는 돈을 포기하는 게 제일 힘든 부분이에요. 21년 장사하면서 단골이 진짜 많거든요. 도곡동, 대치동 뿐 아니라 판교에서까지 주문이 와요. 이사 간 손님들이 차를 타고 와서 치킨을 받아가거든요. 어떤 손님은 진공 포장해서 스페인으로 가져가기도 해요.”


 와우! 거의 연중무휴로 탁자 다섯 개에 알바생 하나 없는 가게. 혼자서 닭을 튀기고 홀 서빙에 오토바이로 직접 배달까지 해낸 억척 사장님인 그녀다. 동네 아재들이 주축인 고객 명단이 얼마나 두툼할지 알기는 어렵지만 충성도가 높은 게 특징이란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 진짜 어려웠어요. 그 때 동네 아저씨들이 괜히 골뱅이나 먹태를 하나씩 더 시키더라고요. 평소엔 치킨 하나로 생맥주 마시던 분들이었거든요. 그때 제가 너무 장사가 안 돼 맨날 우거지상을 하고 있었나 봐요. 그 덕분에 그 시기를 견뎌냈어요. 그분들을 진짜 평생 못 잊을 거예요.”


 골목 안에 있는 그녀의 치킨집은 인지도나 인기가 그리 높지 않은 프랜차이즈 업체. 헌데 닭을 튀겨내는 솜씨는 입맛 까다로운 내 딸까지 고객 명부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뛰어나다. 프랜차이즈 본점에서 제공하는 똑 같은 재료임에도 주방 인력의 숙련도에 따라 맛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건 정설!


40대 중반, 치킨가게를 열어 딸 하나와 아들 둘을 키워 독립시켰다는 그녀. 아들들은 모두 공무원이 됐다고 자랑한다. 남편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아마 가게를 열 무렵부터 홀로 서기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혼자 힘으로 1녀2남을 키워낸 업적, 칭송받아 마땅하다.


 “제가 오토바이로 치킨 배달 다니면서 찻길에서 주문 전화 받는 것 때문에 딸이 엄청 스트레스 받았대요. 사실 도로 한 가운데서 오토바이 몰면서 전화 받는 건 진땀나거든요. 차가 밀리면 보도 옆 차선으로 오토바이를 움직이기 힘들고요. 라이더에게 맡기는 방법이 있긴 한데, 그냥 끝내기로요. 이제 좀 다르게 살아보는 거죠.”


 “일을 그만 두면 당장 돈을 못 버는 게 겁이 좀 나긴 해요. 그래도 저축 조금 있고 연금 조금 받고 아들딸 용돈 조금씩 받으면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영 안 되면 치킨집 알바를 하면 돼요. 하루 네 시간씩 파트 타이머로 일할 곳은 많거든요. 이래봬도 알아주는 기술자니까.” 넘치는 자신감에 매력 뿜뿜!


 그녀의 폐업에 동네 단골 아재들은 패닉(?) 상태란다. 별 약속 없이도 해질 무렵 어슬렁 나타나는 치맥 동아리 회원이나 혼맥 손님이 꽤 많은 가게의 특성 때문이다. 폐업 충격에 요즘 부쩍 가게를 자주 찾아 ‘갈 곳을 잃은 중년’의 외로움을 토로한다나.


 이제 그녀는 운동부터 시작하고 싶단다. “어깨랑 허리랑 발목이랑 사실 안 아픈 데가 없어요. 허벅지나 엉덩이도 아예 물렁살이 돼버렸고요. 사람들이 근육 운동을 하라고 권하니, 일단 많이 걷고 근육 운동을 배워보려고요.”


 엄마로서 가장으로서의 임무를 무사히 달성해낸 그녀가 이제 자기 자신에 집중하겠다는 선언! 지지한다. 폐업을 가슴 설렌 새 출발로 만든 치킨집 여사장. 나는 먹기 아까운 마지막 닭날개에 맥주를 따른다. 그녀의 새 봄날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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