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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Feb 20. 2022

이번 생이 폭망이라는 후배 여성에게

오랜만에 만난 옛 직장 후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소고기국밥에 숟갈을 담근 채 푸념을 늘어놓는다. “퇴직한 남편이 회사 사무실 짐을 아파트 거실에 한 달째 쌓아놔 돌아버리겠어요. 아무리 버리자고 말해도 듣질 않아요. 요즘은 내가 잔소리 한 마디만 해도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거 있죠.”


 대기업 임원이던 남편은 그녀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퇴직 후 급변한 상황에 적응하느라 유난히 끙끙 앓고 있는 중. 삶의 일대 전환기에 처한 남편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도 점점 지쳐간다는 그녀다.


 “제가 퇴직 선배니까, 은퇴 직후의 상실감을 잘 알죠. 그래서 웬만하면 감싸주려고 하는데, 남편은 점점 우울증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어두워지면 혼자 나가서 좀 걷다 들어오는 게 외출의 전부예요. 제주도에  한달 살기를 해보자고 권했더니 만사 귀찮다고 하더라고요. 남이 보기엔 나름 성공한 커리어였는데, 뭐, 세상한테 잘린 것 같은 느낌이라나요. 그러니 집안에 온통 먹구름이 끼었죠. 이젠 저도 말 붙이기 싫어요.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어색해요. 오미크론 감염 숫자가 늘어나는 데도, 저는 괜히 밥 친구 찾아 밖으로 돌아다니게 되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국밥을 떠먹는다. 우선 후배의 하소연을 잘 들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카페로 자리를 옮기자 후배의 친구인 명퇴 교사가 합류한다. “명색이 교사 부부였는데, 자식 교육은 폭망이예요.”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학폭 가해자였음을 뒤늦게 알게 됐던 그녀. 그 충격은 결국 명퇴로 이어졌다.


 그녀의 아들은 대학 시절 사귄 여친과 결혼 후 이혼했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실직까지 겹쳤다. 아들의 이혼 후 할머니인 그녀가 손녀 양육을 떠맡게 됐다. 양육권을 갖게 된 것만도 다행이라는 그녀. 하지만 집으로 다시 들어온 도로 취준생 아들 수발에 손녀 양육까지, 점점 힘이 부친다.


 “밤마다 어깨랑 허리에 파스를 붙이는 게 일이예요. 이게 얼마나 계속될지 끝이 보이지 않는 게 진짜 힘든 부분이죠. 제가 남한테 나쁜 짓 한 게 별로 없는데... 아무래도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거 같아요.” 셋이서 하하하, 씁쓸한 웃음이다. 자기 몸을 각자 귀하게 잘 돌보자고 서로를 응원하면서 헤어진다.


 설명되기 힘든 일들은 언제나 일어난다. 내게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우리는 정말 전생의 잘못으로 발생한 업 때문에 이번 생에서 응징을 당하는 걸까? 집으로 돌아와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린다.


 “많은 사람들은 카르마를 징벌의 과정으로 여겨 현생의 삶이 과거 생에서 행한 잘못에 대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르마는 징벌이 아니라 각 개인이 과거 생에서 행한 실수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보상하는 기회이다. 즉, 과거 생에서 무슨 잘못을 했든지 간에 현생에서 바르게 살아, 과거 생에서 미처 완수하지 못한 일들을 끝마치고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이 탄생이나 능력에서 불공평한 것은 조물주의 변덕이나 유전의 맹목적인 메커니즘 때문이 아니라, 각 개인의 과거 행위가 원인이다. 이 세상은 지혜와 완성을 향하여 진화하는 학교이며 인간이 겪는 괴로움은 세상이란 학교의 교과서이다.”

-- 존 G. 풀러 <에드거 케이시의 삶의 열 가지 해답>


 Wow! 그렇다면 이번 생이 폭망이라고 느끼는 이들을 덮친 고통이나 부자유가 죄값을 치르는 게 아니라 잘못을 만회할 기회라는 해석이겠다. 평생 속 썩이는 남편 때문에 괴로운 아내들, 말 안 듣는 아들딸로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위로가 좀 될 것 같다.


  세상을 거대한 학교라고 한다면 인생은 빡센 수행 코스라고 봐야겠지. 결혼 같은 고강도 수행 프로그램이 내장된 건 또 뭐지? 삶이 제공하는 단맛부터 매운맛, 쓴맛까지 다섯 가지 맛을 골고루 맛보라는 조물주의 스페셜 배려일까? 어쩌면 아들딸 낳아 기르며 지지고 볶는 이 코스에서 꼭 따야할 학점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직접 체험을 통해야만 얻는 깨달음이 그 학점일지도.


댄서 홍신자 선생은 말했다.


 “인생은 체험이다. 인생이란 무슨 최종적인 성과를 얻고, 무슨 최종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체험, 체험하는 ‘과정’이다. 우리 인생에 단 하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을 과정으로서 온전히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를 위한 변명>


 제각각 파란만장할 체험의 여정에 대처하는 자세는 철학적일 수도, 종교적 일 수도 있겠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에겐 선택권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살지, 아니면 찡그린 얼굴로 살아갈 지를.”


 저마다 근심걱정 한 보따리를 등에 지고 걷더라도, 별일 아닌 듯 그냥 살아 볼 일이다. 지구에 캠핑 나온 사람처럼  마주치는 모든 풍경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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