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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Jul 09. 2021

장맛비 속 짜이 한잔

꿉꿉하다. 장마로 집안팍에 넘쳐나는 습기 때문이다. 이럴 땐 인도식 밀크티, 짜이가 정답이다.


가루 홍차랑 티 마살라를 우유에 넣고 한바탕  부르르 끓이면 완성. 향신료 믹스인 마살라 (masala)의 미친 존재감을 느낄 차례다.


영국식 밀크티에 비해  인도식 밀크티는 얼얼한 끝맛으로 확 차별화된다. 인도요리의 만능 MSG로 등극한 마살라.  첫맛 적응은 힘들어도 중독성이 강하다. 카다멈, 계피, 월계수잎, 생강, 큐민,고수 등 재료의 무한 조합이 가능한 마살라 덕분에 집집마다 음식 맛이 달라진다나. 물론 마트엔 셀수 없을 만큼 다양한 마살라가 있다.

  

짜이  한 잔으로 몸속 습기를 날렸으니 내친 김에 발리우드 영화 한편이나  때려볼까. 요즘 시들해진 넷플릭스 대신 토종 OTT를 열어 훑어내리기 시작한다.


어찌어찌 인도를 배경으로 한 영드 한편을 고른다.

<굿 카르마 하스피털>, 인도 풍이 물씬한 화면이다. 인도 서남해안, 가상의 소도시  바르코를 배경으로 젊은 인도계 영국인 여의사의 로맨스를 버무린 성장기란다.


발리우드랑 멀어서인지 뜬금없는 춤과 노래는 없다. 병원장으로 나오는 중년 영국배우 아만다 레드만의 거침없는 카리스마가  화면을  꽉 채운다.


시즌제 메디컬 드라마답게 가정폭력, 동성애, 세대 갈등, 부부 갈등에 염산 테러 환자까지 병원엔 바람 잘날이 없다. 상처받는 인물들의 이번 생은 정말 카르마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건가?


과거 생에서 행한 잘못이 잔고처럼 이번 생으로 이월돼 허덕거려야 하는 게 카르마라면, 정말이지 믿고싶지 않다. 다만 과거 생에서 무슨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이번 생에서 바르게(?) 살아 과거 생에서 미처 완수하지 못한 일들을 끝마치고 극복하게 되는 과정이라면  뭐 나쁘지 않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은 개인의 영적 진화를 위한 학교라는 누군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 우리가 겪는 온갖 세상살이 괴로움은 고강도 수행 커리큘럼이라던가. 그렇다면 노년은  빡센 이번 생을 총정리하는 마지막 학기가 되겠지.


카르마가 있건 말건,  내가 이번 생을 살다 가서 이 지구가 눈꼽만큼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원대한 야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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