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쉼'이란

by 김청라

나는 템플스테이를 13년 간격으로 각각 다른 절에 다녀왔다. 처음 갔던 절에서 5시 새벽 불공, 공양 그릇 깨끗이 비우기, 108배하기 등 엄격한 규율에 힘들었다.

이번 참여 기회가 왔을 때 그때의 괴로웠던 경험이 떠올라 한동안 망설였다. 그런데 절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프로그램이 많이 달라져 있어 마음이 동했다. 십여 년이 흘렀고, 사찰도 다르니 또 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4박 5일의 일정으로 여름의 더운 7월에 동참하게 되었다.


도착한 날 17시 10분 이른 저녁을 먹으며, 늦은 밤 행여 배고픔으로 잠 못 이룰까 봐 밥을 잔뜩 먹었다. 밤은 깊어가고 우려와 달리 배는 고프지 않은 데 온갖 잡동사니 생각들로 잠은 더 안 왔다. 날 밤을 새우고 나서 그래도 나보다 세 시간 더 잔 남편에게 “당신,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어요”라며 애꿎은 화풀이를 했다. 공양 시간이 한 시간가량 남아 있었지만, 더 누워있는 게 별 의미 없다 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방 옆에 딸린 세면장은 넓고 깨끗했다. 세수를 하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마루에 걸터앉았다.


아침에 새 지저귀는 소리가 한결 정겹게 들렸다. 앞산을 바라보니 어제저녁 무렵 산꼭대기에 걸려 있던 운무가 산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거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있는데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슬금슬금 아래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저게 뭐지’ 하고 자세히 봤더니 그것은 바로 안개였다. “어머, 안개도 하산을 하나 봐”


옆 숲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누런 개 한 마리가 어디서 왔나, 절에 일찍도 올라왔네 하고 살펴봤더니 새끼멧돼지였다.

절 주변으로 멧돼지가 내려온다던,

어제 절 안내해 주시던 보살님 말씀이 생각나 멧돼지인 줄 알았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좀 가까이 다가가 한 컷을 찍고 다음 컷을 누르려는데 이놈이 눈치채고 나무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나, 사진 찍히기 싫어요, 찍지 마세요. 꿀꿀”하는 것 같았다. 다시 마루에 걸터앉아 앞산을 바라봤다. 절에서 일하는 처사님이 리어카를 끌고 멧돼지가 들어갔던 숲 옆길을 가고 있었다. 행여 서로 마주치나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곳을 다 지나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의 행동을 보니 서로가

인지를 못 한 듯했다.



점심때가 되었다. 30대 중후반 자매끼리 온 그녀들과 밥 먹으러 공양간으로 함께 걸어갔다. 가는 길에 돌담 축대 사이를 비집고 핀 채송화가 보였다. 그 꽃은 내가 알던 채송화보다 살이 통통했고 짙은 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그녀들 중 동생이 “아이 예뻐라”하며 손을 대려 하다 “으악, 놀래라” 소리를 질렀다. 그녀 옆에서

걷던 나도 “예쁘다”하고 채송화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옴마야” 소리가 튀어나왔다. 뱀이 꽃 속에서 삼각 머리를 세우고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어이쿠, 큰일 날 뻔했네, 그녀가 미처 발견 못했더라면 뱀 머리를 쓰다듬을 뻔한 것이다. 물렸을 수도 있고,..


아침저녁으로 해 기운이 약한 시간 때쯤 계곡 옆으로 난 정비 된 길을 따라 산 위, 아래로 산책을 나갔다.

산골짜기 물은 시원하고 깨끗했다. 흐르는 물이 바위를 만나 부딪치며 내는 하얀 포말은 진주알이 흩어져 떨어지는 것 같이 보였다. 길옆 나뭇잎들은 푸른 싱그러움을 더해 주었다. 어쩌다 부는 바람은

내 긴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만져

주고 사라져 갔다.

더없이 평화로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다 만난 안내판에 이곳이 6.25 전쟁 이후 낮에는 국군이 점령했고 밤이 되면 빨치산 활동무대였다고 일러 주었다. 아름다운 계곡에서 동족끼리 죽이고 죽는 상황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그런 사연을 간직한 채 물은 유유히 흘렀고 나무는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나 보다.


낮에는 방 앞에 놓여 있는 파란색 플라스틱 큰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눈을

감고 명상하기도 하고 앞산을 멍 때리고 바라보기도 하며 보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산책을 못하는 아쉬움은 있더라도 산속사찰의 운치가 더없이 좋았다.

비를 맞고 있는 절집의 회색빛 풍경,

그 지붕 위로 저 멀리 보이는 수려한 산들, 귀를 기울이면 앞산의 나뭇잎 위로 내려앉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스님 지도로 그 자매들과 보리수 열매를 엮어 만든 108 염주였다. 낚싯줄에 한 알 한 알 끼워서 만들었다. 스님은 만든 염주 말고 염주 소쿠리에서 비단 주머니에 들어 있는 모양 예쁜 염주를 선물해 주셨다. 감사했다.



마지막 날에는 위쪽 유평마을까지 가보았다. 이 마을은 박정희 정부 시절 유평, 외곡, 삼거리, 중땀, 아랫 새재, 위 새재 6개 마을에 흩어져 있던 외딴집들을 없애고 유평을 중심으로 합쳐져 만든 마을이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식당, 고로쇠 채취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마을에 있었던 가랑잎 초등학교는 산속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학교 이름은 한 신문기자가 가을 운동장의 정겨운 낙엽 속에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붙였으며, 1960년대는 학생 수가 100명이 넘었으나 1994년에 폐교되었다.


남편과 갑을 주막에서 도토리묵과 지리산 생막걸리를 시켜 먹었다. 이 집에서 만들어 놓은 물레방아가 물방아를 열심히 찧고 있었다. 세월을 찧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템플스테이는 나에게 쉼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부터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입에 밥이 들어갈 수 없었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깨끗한 환경에 살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은 내가 그 일을 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내게 템플스테이는 완벽한 휴식시간이 되었다.

누군가가 ’ 여자는 죽을 때까지 솥뚜껑 운전해야 하는 운명이다 ‘라고 말했지만, 이번엔 그 솥뚜껑을 잠시 내려놓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책 읽기, 명상하기, 자연 바라보기 등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쓸 수 있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때 만들어 왔던 108 염주는 우리 자동차 앞 거울에 둘러쳐져 차가 움직일 때마다 ’ 안전운전‘을 외치고 있다. 처음 절에서 만났던 5시 새벽 불공, 공양 그릇 깨끗이 비우기, 108배하기 등은 이 절에서는 자율에 맡겨져 더욱 힐링이 되었다.


운무 그윽한 앞산, 청량한 바람, 정겨운 새소리, 풍성한 푸른 식단, 시원하게 쏟아 내리는 계곡물, 푸른 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쉼‘이란 이런 것이었다.



keyword
이전 16화먼길 떠난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