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아침, 열 시부터 친구랑 백양산 등산로를 따라 걷는다. 일주일간 일어난 집안일 등 소소한 일상 얘기들을 나누며 걷는 시간이 참 좋다. 이번 주에는 월요일에 시간이 맞지 않아 하루 당겨 일요일에 만났다.
가을로 접어든 산은 걷기 딱 좋은 날씨였다. 산책로를 따라, 길옆으로 여름부터 시작한 황톳길 공사가 마무리되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고, 신발 신는 곳에서 발을 씻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 산은 걷기 좋은 곳이야'라고 생각하며 걸어가던 중, 저 멀리서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두 명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 뒤로 계속 사람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초등학생들도 있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 오늘 걷기 대회하는 날'이라고 한다. 한적했던 산길이 도시의 번잡한 거리처럼 변해버렸다.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피해 보고자 했으나, 워낙 많은 인원이라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걷다 보니, 부딪칠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을 피해 요리조리 걷다가 사잇길로 빠졌다. 비로소 호젓한 산길을 만날 수 있었다.
키 큰 나무들 사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 후,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빠져나갔고, 뒤쳐진 몇 명만 남아 있었다.
걷기 대회 코스 중간지점에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초등 오 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그 옆에서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아이에게 산행은 무리였나 보다' 하고 지나쳐 갔는데, 이번에는 초등학교 이 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엄마가 그렇게 앉아 있었다. ‘저 아이를 업어줄까’ 하는 생각이 반짝 스쳤으나, 나뿐만 아니라 그 아이의 엄마도 아이를 업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걷는 코스 중간쯤에는 산 위에서 물이 흘러 내려와, 작은 폭포를 이루는 곳이 있다. 그 앞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려는데, 옆 벤치에 빨간 옷을 입은 휴대폰이 누워 있었다. 누군가가 두고 간 성싶었다.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두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냥 지나가지 않고 “누가 두고 갔나 봐요” 한 마디씩 툭툭 던지고 갔다. 같은 소리를 자꾸 들으니 듣기 싫어, 주인 인양 휴대폰 옆으로 옮겨 앉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벨소리를 듣고도 주변의 그 누구도 전화를 받으려 하지 안 했다. 우리가 가장 가까이 있었고 벨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 울어대자, 결국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폰 주인이었다. 옆에서 보니 카드가 폰케이스 안쪽에 끼워진 게 보였다. 주워 준 폰에 카드 없어졌다고 도둑 취급당할 것 같은 염려가 잠시 스쳤다. 손을 잘 못 댔나 싶기도 했다.
전화의 주인은 대회 참가자로 이 산의 지리를 잘 모르는 듯했다. 폭포 내려오는 길옆이라 하면, 이 산을 다니는 사람들은 안다. 몇 번을 되풀이해서 알려줘도 못 알아들었다.
산행 중 자신이 앉았던 벤치가 어디인지 모르니 설명해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지금 성지곡 수원지 입구에 있다고 하였고, 폭포까지 오려면 20분쯤 걸릴 것 같았다. 우리는 사람들로 인해 산행 시간이 지체되어 그녀를 기다려 줄 시간이 없었다. '괜히 받았나 봐' 하는 생각과, ' 반대입장이 되었을 때 '잃어버리고 얼마나 애가 탈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우리는 옆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에게 “폰 주인이 오면 주세요” 하고 폰을 건넸다. 그들은 폰주인이 그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보았다고 했다. 우리는 그럼 잘 되었다 하고 우리 갈 길을 갔다.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다. 예전에는 휴대폰을 슬쩍 훔쳐 가기도 하고, 주은 휴대폰은 마음먹기 따라 자기 것으로 만들기도 하고, 팔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요즈음은 cctv가 정직한 사회가 되는데, 일조를 하고 있기도 해서 그런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산속이라 cctv가 없긴 하지만, 먼저 본 사람이 임자이던 시절과는 대조적이다.
휴대폰이 처음 나와 귀하던 때는 주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면 작은 횡재가 되기도 하고, 파출소에 맡기면 선행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지금은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만지는 순간 시간과 노력과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는 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니 그 누구도 나서서 찾아 주려 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된 것이 잘 된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가 맡겼던 휴대폰은 걷기 대회 참가자 주인과 감격의 상봉을 하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