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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과 짝퉁

by 김청라

오월의 신부, 지인 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바지 정장을 입었다. 신발은 구두를 신으려다 운동화를 착용했다. 무릎뼈 골절 수술 후 재활 중이라 구두는 무리였다. 핸드백은 뭐를 들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온천천 산책 시에 들고나가는 가방이 있다. 가방이라기보다 주머니에 가깝다. 무명천으로 된 간단한 소지품만 들어가는 것인데 손목에 끼고 다니기 좋다. 사용하기 편해 애용하고 있다. 오래 들고 다녔더니 낡은 것처럼 보인다. 큰딸이 이것을 보고 가죽으로 된 조그만 토트백을 선물해 줬다.

퇴직 기념으로 선물 받은 고급 백은 창고에 고이 모셔뒀는데 꺼내 들기도 귀찮았다. 주머니 같은 가방을 들고 가기도 뭣해서 토트백이 눈에 띄길래 그걸 들고 나섰다. 가방에 참도 달려 있었다.

결혼식장에 도착해 둥근 테이블에 앉았다. 같은 자리에 앉은 지인이 나하고 같은 백을 들고 왔다. 내 것보다 밋밋한 느낌, 참을 달지 않아서 깔끔한 느낌이 났다. 순간 당황했으나, 요즈음 이런 가방이 유행인가 보다 내심 생각했다.


집에 와서 “지인과 가방이 똑같았다.”라고 딸들에게 얘기했다. 작은딸이 흥분하며 화를 냈다. “엄마는 지금 에르메스 짝퉁을 들고 간 것이고, 비싸서 살 돈은 없으나 명품 들고 허세 부리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주로 하는 행동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명품인지 짝퉁인지 몰랐다. 그 가방이 결혼식 갈 때 상황에 맞아서 들고 간 것뿐이었다. 내가 들고 간 가방이 에르메스 짝퉁이란 걸 딸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알았다. 나는 명품도 허세도 관심이 없다. 진품 들고 온 지인은 가방 참이 없었고 짝퉁인 내 가방에는 고급스러운 참까지 붙여져 있었으니 진품보다 짝퉁이 더 때깔이 났다. 가짜가 더 반짝거린 것이다. 같이 간 남편도 내 가방이 더 빛나 보였다고 한다. 지인은 짝퉁인 줄 모르고 참까지 참하게 붙은 내 가방에 기가 죽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방을 준 큰딸이 말했다. “엄마 그거는 짝퉁이라도 SA급이라 진짜와 구분이 잘 안 되어요.”라고 했다. ‘짝퉁도 등급이 있는데 B급 A급 SA급이 있고, 거울에 비친 것처럼 똑같다는 미러급도 있다’고 했다. 나는 “명품 짝퉁을 주면 어떻게 하냐, 짝퉁이라고 했으면 들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사지도 말고 주지도 마라”라며 큰딸을 나무랐다. 혹여 지인이 짝퉁이란 걸 알게 되면 많이 멋쩍을 것 같다.

나는 가방, 옷, 구두 등의 명품을 잘 모른다. 딸하고 외출하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입은 옷을 보고 딸은 저거는 폴로 랄프로렌이고 저거는 셀린느, 몽클레어이고 하면서 알아봤다. 나는 눈을 뜨고 있어도 안보였다. 보인들 그것이 뭔지를 모른다.


명품이라고 하는 것이 옷뿐 아니라 가방, 지갑, 구두, 시계, 벨트, 액세서리, 향수 등 일상생활용품에 많이 들어와 있다. 명품 로고를 달고 어마한 몸값을 부착한 채로 애호가들의 환영을 받는다. 만약 내가 명품 애호가였다면 참 고달픈 인생을 살았을 것 같다. 모임에 가면 너도나도 명품 가방 하나씩 끼고 나타나는데 상대적 초라함을 느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가방이 뭔지 몰랐으며, 입은 옷도 마찬가지였다. 알아보고 부러웠다면 안 되는 형편에 명품 하나를 사려고 내 생활의 다른 것들을 희생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명품 하나를 얻고 남편에게 신세 한탄하며 불화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 모르는 게 약’ 조상들의 명언이 실감 났다.

한때 나도 명품 상표 공부한 적이 있다. 맡은 업무 처리를 위해서였다. 로고와 상품명을 대조해 가며 눈에 익혔다. 루이뷔통, 샤넬, 구찌, 에르메스, 까르띠에, 롤렉스, 디올, 티파니, 버버리, 페라가모 등등이 명품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로고를 보며 열심히 외웠다. 실전에 나가서 보니 알파벳 C가 두 개 교차해서 붙어 있는 샤넬 핸드백 가품이 제일 많았다. 다음은 루이뷔통 핸드백이었고 시계는 페라가모 가품이 있었다. 업무가 바뀌고부터 명품에 대해 다시 깜깜이가 되었다.


가품은 명품 살 돈은 없고, 가지고는 싶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겨났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진짜와 가깝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도 모르겠다. 상거래 질서, 상도덕에 위배되는 일이지만 수요가 있으니 공급 또한 있는 것이다. 더불어 원 판매자 보호를 위해 가품 단속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품에 환호한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들도 많다. 나는 예외인 사람 축에 속한다. 나는 ‘명품은, 알아봐 주는 사람 앞에서만 빛을 발한다’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은 조금 예쁜, 조금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가방, 구두, 옷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된다. 몸에 명품 두르고 명품 차고 명품 든다 고 사람까지 명품일까, 착용한 것이 명품이 아니라 사람이 명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도 명품, 착용한 것도 명품이면 금상첨화일 테고 옆에 선 배우자까지 명품이면 멋진 인생이 아닐까,


2023년 1인당 명품 소비 세계 1위가 한국이라는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의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명품에 열광하니 전 세계 명품이 한국으로 쏠린다고 한다. 명품이 쏠리는 대한민국이 명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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