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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향한 여정

by 김청라

‘그림 그리는 삶’은 언제나 나를 비껴갔다. 형편 때문에, 상황 때문에, 때로는 용기 부족 때문에 그림 그리기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수십 년 동안 그림을 짝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 "어린 네가 벽이나 방바닥 등에 한 낙서를 지우느라 힘들었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미술 시간이 기다려졌으며, 그 수업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는 기억이 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그림을 배워보고 싶었으나, 미술학원 과외비가 만만치 않아 우리 집 형편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술에 소질이 있어 그리기 대회에 나가 상을 타본 일도 없었다. 철이 들었던 맏이인 나는 부모님께 의사표시 한번 못하였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남자 석고상 흉상을 그리게 되었다. 내가 보기엔 그 얼굴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 있어 그렇게 그렸다. 미술학과로 진학 목표를 두었던 친구들은 각진 얼굴로 그리고 있었다. 순간 ‘내가 뭔가를 잘 못 그리고 있구나, 나는 그림에 관심만 가득하지, 소양이 부족하구나,’ 그때부터 미술로 향한 짝사랑을 묻었다.


미혼 시절 퇴근길에서 어느 표구사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표구 안에 담긴 그림이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그림이라고 알고 있었던 수채화, 유화가 아니었다. 옛날 선조들의 생활상, 꽃 그림, 문방사우 등을 그린 그림이었는데 ‘민화’, '문인화 '라고 했다. 내 안에 가라앉아 있던 그림에 대한 욕망이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아, 저런 그림을 그려야겠다.’ 그러나 그 무렵 결혼하고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바쁜 생활 속에 그 생각은 내 속 어딘가로 다시 가라앉았다.


회사에서 한 직급 승진했다. 승진하고 초기에는 약간의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주어진다. 한날은 어떤 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다. 민화들이 액자 속에 표구되어 있었다.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이런 그림들을 어디서 배울 수 있는지 물어봤다. 의외로 내 사무실에서 한 구역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애들이 어려 저녁 시간을 어떻게 뺄지 고민했다. 다음날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이 생겼다. 버스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발령이 났다. 저녁에 집 가는 데만 한 시간 걸리는데 애들 저녁 챙겨 주려면..., 또 그림은 내 안으로 가라앉혀져야만 했다.



우리 회사 사무실 2층에 종종 그림 전시회를 했다. 나는 짬짬이 보러 갔다. 내가 직접 그림을 그릴 상황은 되더라도 엘리베이터 타고 2층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으니 감상할 상황은 되었다. 한 작품씩 꼼꼼하게 봤다. 그림 옆에 붙은 작가 이름과 그림 제목을 보며 감상했다. 그러다가 그것을 보지 않고도 비슷한 느낌의 그림은 한 사람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말 못 하는 그림이지만 내뿜는 기운으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판매를 곁들인 전시회에는 가격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림을 먼저 보고 가격을 보면 내가 ‘이 그림 근사해’ 하는 그림에는 높은 가격이 매겨져 있어, 나 자신에게 놀란 적도 있었다.

유명 화가들의 그림 전시회가 있으면 가서 보곤 했다. 보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그 그림이 내 것인 양 했다.

인터넷상이나 버리려고 둔 잡지에서 예쁜 그림이나 사진이 보이면 캡처하고, 스크랩해두기도 하였다. 일하다가 시간이 날 적에 꺼내서 보곤 했다.


옆 부서 직원이 그림 재테크를 한다고 하였다. 무명의 화가 그림이나 알려지기 시작한 화가의 그림을 사서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무명이 유명이 되고 유명이 더 유명이 될 때를 기다리며 미리 그림을 사 모으는 것이 그림 재테크라고 했다. 다른 말로 아트테크라고도 했다. 또 그림을 직접 사지 않고 내가 투자한 미술 그림이 업체에 렌털되면 수익이 발생하고 그 수익을 6~12개월 단위로 받는 아트테크도 있다. 그림이 좋아서 보다 약간의 도박성도 곁들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했다. 여가 활용할 것을 찾다가 민화를 발견했다. 가슴이 다시 설레었다. ‘이번에는 꼭 뜻을 이루리라,’ 민화 반 초급에 신청했으나 선착순 모집이라 밀려났다. 민화를 가르쳐 주는 다른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아파트 단지 내에서 턱에 걸려 넘어져 무릎 골절, 손가락 골절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고 그동안 밀려 있던 잔병들의 줄 이은 방문으로 신체부위 각각의 병원들을 들락거려야 했다.


민화 수업받은 사람들 말에 의하면, ‘그림을 그리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기는 하는데, 힘이 든다’고 했다. 들여다보고 있으니 눈이 피로하고, 숙이고 있으니 등도 아프다고 했다. 그린 작품을 보여주는데, 너무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또 가슴이 콩닥거리고 뛰었다. 민화를 향해 마음은 앞서 달려가는데, 이 저질 체력을 어떻게 민화의 세계로 끌고 다녀야 할지 걱정되었다.



AI 그림 세상이 왔다, AI 그림 생성하기를 배워 민화를 그려봤다. 내 명령을 받은 AI는 순식간에 넉 장의 그림을 완성해 펼쳐 보였다. 내가 그리고자 했던, 내 지시를 가장 잘 따른 그림을 골라 휴대폰에 저장하여 사람들에게 내가 그린 AI 그림이라고 소개했다. 지인들은 ‘AI’라는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내고 ‘내가’라는 말을 집중해 듣고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나는 그림 그리기 솜씨보다 그림을 구성하는데 더 소질이 있는 것 같다. AI 그림은 손에 물감을 묻히지 않아도 되고 눈을 혹사시키지 않아도 되며,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을 필요도 없이 예쁜 그림을 완성한다. 그것도 여러 장씩 생성해 낸다.

살아오면서 매번 그림 배울 기회가 어긋났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그림 보는 눈을 키워 왔던 모양이다.

그림에 대한 나의 관심이 AI를 통해 빛을 보는 건가, 비로소 그림을 향한 나의 긴 여정이 AI 그림 생성 별에 도달했다. 미드저니, 레오나르도 AI, 플레이그라운드 AI, 코파일럿, 뤼튼, KREA AI 등과 함께 무한한 나의 그림 세계를 펼쳐 보일 생각에 또 가슴이 쿵쾅거리며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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