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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괜찮아,
지금이 가장 빠른 시작이야

by 김청라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꿈의 크기와 형태가 달라질 뿐이다. 어린 시절엔 하늘만큼 높던 꿈이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의 무게에 눌려 땅으로 내려오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살면서 꿈을 이룬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늦게 시작해서 늦게 이루는 사람도 있고 끝내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람은 꿈에 대한 미련을 가슴에 안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늦었다고 포기할 이유는 없다. 지금 이 순간이 시작하기에 가장 빠른 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하늘처럼 높아 보여 교사가 되고 싶었다. 중학생이 되자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성적에 따라 꿈이 갈팡질팡했다. 대학교 때는 먹고살기 위해 초등 때 꿈인 교사를 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고, 졸업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회사에 취직했다. 결혼 후에는 직장과 육아, 살림에 치여 ‘꿈’이란 단어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쏘아주고 노래에 맞추어 가수 뒷배경을 송출해 주는 영상 기사를 알게 되었다. 물론 그 기사가 그것을 제작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답고 찬란한 장면 하나하나에 감탄하며, 어떻게 저런 작품을 만들어내는지 궁금해졌다. 영상 제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어떤 블로그나 다음 카페 들에는 무대에서 봤던 유사한 영상들이 축소되어 올라와 있었다. 감동적인 글과 아름다운 그림, 음악이 어우러진 영상들을 감탄하며 보곤 했다. 복사 뜨기 해서 사내게시판에 올려서 동료들과 감상 나눔을 하기도 하고 짬이 날 때 들어가서 보면 힐링이 되었다. 하지만 저작권 강화로 복사 뜨기를 할 수 없게 되어 아쉬웠다.

티브이 화면에서 사람들은 보통 노래하는 가수에 집중해서 보는데 나는 뒤의 영상을 열심히 본다. 주객을 바꿔서 보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나도 저런 영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늦은 나이에 꿈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냥 조용히 편안한 여생을 보내야지, 주책이야'하는 생각이 들며 영상 제작 꿈을 덮어 버렸다.


한 날 유튜브에 AI가 그린 그림 영상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영상 제작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영상 제작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쳤다. 그때 서울에서 8주 교육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불행히도 사고로 손가락과 무릎이 골절되면서 다시 멈춰야 했다. 골절 회복 후, 다행스럽게 부산에서도 AI 영상 수업이 개설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뛸 듯이 기뻤다.

늦게 시작한다고 꿈이 늦은 건 아니다. 인생의 마지막 챕터에서 새로운 도전을 펼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찬란하게 빛난다.

81세에 그림을 시작한 미국의 해리 리버만은 101세까지 22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일본의 시바타 도요는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내며 160만 부 이상을 팔아 치웠다. 심지어 슈렉을 탄생시킨 미국 작가 윌리엄 스타이그도 60세가 넘어서야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그의 작품은 전 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그림책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들은 모두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결국 자신만의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게 용기를 주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한 사연이 있다. 오래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인데,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제목은 ‘아기 잠자리’였다. 이 이야기는 한 주부의 하소연이다.

자상하고 성실한 남편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발레를 배우고 싶다며 회사까지 무단결근하고, 결국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남편 나이 마흔일곱, 발레 학원에서 받아주지 않자 DVD를 사서 혼자 연습을 시작했고, 결국 지인의 도움으로 개인 레슨까지 받게 되었다. 문제는 중학생 아이들 학비에, 생활비에 빠듯한 시기에 발레복을 사 입고 연습하는 남편의 모습이었다.

그 주부의 하소연이 절정에 달하는 부분이 있다. "저희 집은 에어컨도 고장 났는데, 발레복을 입고 땀 뻘뻘 흘리며 아기잠자리 노래를 부르며 연습하는 40대 아저씨를 상상이나 해보세요. 저는 지금 우울증 약을 먹고 있어요."

이 글을 다시 봐도 웃음이 났다. 그런데 웃음이 가라앉고 나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 남자의 용기는 정말 대단하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누구보다도 멋진 도전이 아닐까?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히 웃음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이 때문에 망설였던 꿈, 마음속에 가라앉혀 놓았던 꿈이었던 영상 제작 꿈을 펼쳐 보기로 했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이고,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도전 앞에 나이가 없다.


일본 시인 시바타 도요의 ‘바람과 햇살과 나’란 시 한 편을 옮겨 본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문을 열어 주었지/그랬더니/햇살까지 따라와/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혼자서 외롭지 않아?/바람과 햇살이 묻길래/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편히 가자는 말에/다 같이 웃었던 오후

이 분이 늦었다고 생각하고 시 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런 감성 시를 만나지 못할 뻔하였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듯한 느낌이 글에서 팍팍 풍겨 온다.


나는 요즘 AI 영상 제작하는 법을 배워 그것을 만들고 있다. 상상한 그림을 프롬프트로 입력하면 AI가 순식간에 그림을 그려준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시도하고, 글과 음악을 덧붙이면 나만의 영상이 완성된다. 머리를 쓰는 작업이기에 뇌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다음 생으로 미루었던 꿈을 늦은 나이에 도전해서 이루어 가고 있다.

적어도, “즐기며 살 껄”, “늦었어도 시작할 껄”,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볼 껄”, 하는 “껄껄껄” 하지 않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고 노력한다. 내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 나의 꿈 AI 영상 제작에 젊음을 불태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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