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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오후

by 김청라

범일동 애니랑에서 AI영상교육 마치고 범일역에서 도시철도를 탔다. 출입문 옆에서 두 번째 자리가 비어 있어 얼른 앉았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가 넘어있었다. 배가 고파 빨리 집 가서 밥 먹어야지 하고 있는데, 범내골역에서 맞은편 자리가 비워졌다. 나는 부산대가 보이는 쪽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쪽 편에는 활기가 느껴지고 반대편 쪽에는 편안함이 느껴지는데 나는 활기참을 선호해서 그러하다.


빠르게 빈자리에 가 앉았더니 옆자리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이에게서 진한 담배 냄새가 내게로 스멀스멀 이동해 왔다. 잠시, 망설이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열차가 서면역에 도착하면서 출입문이 열렸다. 그 때, 승차하던 할머니가 내가 비웠던 자리로 나와 동시에 다가선 짧은 순간, 자리 경쟁에 밀려 다시 건너편 빈자리에 가 앉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옆자리 20대 초반 청년의 살짝 벌린 입에서 심한 구취가 쏟아져 나왔다. 점심을 아직 못 먹은 듯했다. 그때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바라보니, 사선 방향에 앉아 있는 볼살이 늘어진 웬 노파가 못마땅하다는 듯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저분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자리 이동 순간은 1분이 안 되었듯 싶은데 왜지, 자기 자리 뺏은 것도 아니고 시끄럽게 군 것도 아닌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예전에 정법을 공부하던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몸에 영(靈)을 받은 사람들은 정법을 수행하는 사람을 보면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몸을 움츠리거나, 안절부절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 노파의 몸속에도 무언가 깃들여 있는 걸까?, 나는 정법을 한 사람이 아니라서 도끼눈을 하고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신 이상자인가?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왜요?”하고 물었다. 노파는 나의 물음에 표정의 변화 없이 계속 노려만 봤다. 그 눈길을 피하려고 휴대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기도 해 보았지만, 여전히 내게 시선을 꽂아두고 있었다. 노파는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도 시선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무시하려 해도 무시가 되지 않고 굉장히 거슬렸다.


‘다른 칸으로 이동할까?’ 고민했지만, 나보다 먼저 타고 있었던 그녀가 환승역인 연산역에 내릴 것 같아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안 내렸다. 다음 역에서도, 그다음 역에서도 내릴 생각을 안 했다. 째려보다 말겠지, 옆으로 돌린 고개가 아파서라도, 흘겨보느라 눈도 피곤할 텐데, 그만하겠거니 한,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내가 내릴 때까지 변함없이 노려봤다. 징글징글한 의지가 강한 노파였다. 나는 내릴 역에 도착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을 지나쳐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등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써에서 내리네...”순간 소름이 확 돋았다.

오랫동안 도시철도를 이용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20대 후반의 젊은이에게서 진한 담배 냄새가 날 줄은 몰랐고 20대 초반 청년에게서 심한 입 냄새가 난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20분 동안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노려 보인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냄새에 예민한 편이 아닌데, 이 두 가지 강렬한 냄새를 한날한시에 맡게 된 것은 어떤 조화일까? 이 모든 것이 우연이었을까? 그날의 오후는 너무도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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