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성장 서사
우희준의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이 앨범은 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을 처음 자각한 순간’부터 ‘현실의 무게에 지치는 시점’까지의 흐름을 노래한다. 동요처럼 맑고 아이 같은 보컬로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차분하고 무력해진 감정으로 변화하는 흐름은, 마치 한 사람의 성장일기를 음악으로 재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초반부를 이루는 ‘낮은 신’과 ‘굽’, ‘맨몸’은 거칠고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하다. 초반을 장식하는 ‘낮은 신’에서는 두근거리는 모험의 서사를 동동거리는 베이스의 사운드로 표현된다. ‘굽’에서 보컬은 사이키델릭한 밴드 사운드 위에 서툴고도 직접적인 에너지를 실어 나르고, 곡은 포기와 전진 사이에서 한 발을 내딛는 심정으로 끝맺는다. 이어지는 ‘맨몸’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펑크적인 질감과 아이 같은 보컬이 충돌하면서, 유쾌함과 동시에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삶을 처음 겪는 소녀의 솔직하고 투박한 언어처럼, 이 곡들은 세상과의 첫 마주침을 담고 있다.
‘노력’과 ‘조용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소리’는 다소 가벼운 듯 들리는 사운드 속에, 점점 더 무거운 현실 인식이 배어든다. ‘노력’은 가정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통통 튀는 프레이징으로 무심하게 밀어내며, 듣는 이로 하여금 그 거리감 자체에 아픔을 느끼게 한다. ‘조용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소리’는 멜로디만 들으면 동요처럼 발랄하지만, 가사에는 현실에 찌든 어른의 피로가 묻어난다. 이 곡들은 주인공이 세상에 길들여지는 과정을 그리며, 순수한 리듬 안에서 균열을 만들어낸다.
중반의 ‘나 같은 아이라면은’과 ‘넓은 집’에 이르면, 보컬의 톤과 곡의 연주 모두에서 이전보다 성숙한 감정이 느껴진다. ‘나 같은 아이라면은’은 나일론 기타와 베이스를 중심으로 아날로그적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제는 자신의 고독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화자의 내면을 보여준다. ‘넓은 집’은 마치 사회생활을 거쳐 지친 어른의 한숨처럼 들린다. 후반부로 갈수록 몰아치는 기타 사운드는 감정의 폭발을, 그리고 그 직후의 침묵은 무력한 체념을 상징한다.
‘악다구니’는 해탈에 가까운 분위기를 지닌다. 웃음소리가 중간중간 삽입되고,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베이스가 자연스럽게 섞이며 전반적으로 탈력감이 감돈다. 훅에서 겹쳐지는 보컬은 어느 순간 미스터리하고, 마지막에는 조용히 가라앉는다. 이 곡은 자아와 현실의 싸움이 끝난 뒤 남는 정서적 평지에 가깝다.
마지막 트랙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은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삶의 파동을 그려낸다. 처음엔 고요하게 시작하지만, 실로폰과 심벌즈, 일렉 기타가 켜켜이 쌓이며 점점 고조된다. 그러다 이내 잦아드는 구조는, 삶이 끊길 듯 끊기지 않으며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고통은 규칙적이지 않고, 리듬은 비정형이며, 그럼에도 우리는 이어진다.
이 앨범은 곡마다 보컬의 톤이 변하고, 감정의 결이 바뀌며, 소녀에서 어른으로 흐르는 시간의 편린들을 하나씩 짚어간다. 내가 이 앨범에 7.9점을 준 것은 평가가 아니라 경이의 숫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