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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Jun 24. 2019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여행

한 사람의 기억에 남는 여행지란 어떤 것일까



년 이맘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 친구와 나는 친한 동기가 사는 송도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로 했다. 뭔가 계획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그 동기를 만나서 재밌게 노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식의 생각이 있었을 뿐. 일단 무계획적으로 일을 벌이고 그다음을 생각하는 우리로써는 계획은 사치였다.


여행 당일, 동네 친구와 나는 송도에 도착한 직후 대학교 동기를 차에 태워 트리플 스트리트로 향했다. 그 장소를 찾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동기 녀석이 다른 곳은 몰라도 그곳은 가야 한다고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트리플 스트리트에서는 때마침 포켓몬 월드 페스티벌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부터 밖에 나가기 전까지 벽과 기둥마다 붙어있는 수많은 포켓몬의 그림들이 나와 친구들을 먼저 반겨주었다. 친구들과 지하 쇼핑몰을 느긋하게 구경하며 천천히 올라간 나는 트리플 스트리트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출처 : 트리플 스트리트 홈페이지


하늘색과 파란색이 적절하게 섞여있는 푸르른 하늘. 그 하늘 아래를 걱정하나 하지 않는 표정으로 한가로이 걷는 사람들. 초록빛 잔디와 함께 깔려있는 돌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부모들. 길가에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조그마한 소품들을 파는 프리마켓들과 그 사이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 사람들. 여기저기 장식되어 있는 포켓몬들과 그 사이에 서서 함께 사진을 찍는 커플들


너무나도 평화로운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슬며시 웃는 나에게 순간 내 친구가 물었다.


여기 어때? 엄청 좋지?


나는 뭐라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였고, 당시에는 그저 좋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트리플 스트리트를 보며 왜 웃을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았다.

  

사실 송도 여행을 떠날 때의 나는 어딘가 절박했었다.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며 몇 개월간 도서관과 집만을 왕복하며 제대로 쉬는 시간 없이 지내왔었던 탓이었을까.

나는 일상에서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시험이 끝나자마자 여행을 떠나자고 주변 친구들에게 얘기를 꺼냈던 것은, 내가 찾지 못했던 그 여유를 얻어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여행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트리플 스트리트를 마주한 순간 나는 여행이란 결국 여유와 행복을 얻고자 떠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웃었던 것이 틀림없다. 사실 여행을 떠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이유가 휴가를 즐기기 위해 가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지독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정말 나처럼 상당 시간 인내하고 참아오며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기 위한 마음으로 떠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 변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여유와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정오 무렵 도착해 트리플 스트리트를 구경하던 우리 셋은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다른 곳으로 향했다.

송도에 사는 친구가 마지막으로 추천한 여행지는 ‘솔찬공원’이라는 장소였다. 노을이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시작하여 해가 완전히 떨어지는 이 시간대에는 꼭 가야 한다며 데려간 그곳. 송도 여행 이후 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장소를 잊을 수 없다.



직접 찍은 솔찬 공원의 전경


보랏빛. 그날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 보랏빛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까만 장막 뒤로 숨으려는 태양의 빛과 장막 위를 은은하게 비추려 하는 초승달의 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연보랏빛 하늘. 그 아래에서 조용히 물들어 소리 없이 잔잔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보랏빛 바다. 그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우리 셋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셋이 처음 만났던 때부터 시작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추억.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들. 이야기 중간중간 섞여있는 실없는 농담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짓는 서로의 웃음.

     

몇 시간 동안 해가 숨고 서서히 어둑어둑해지는 바다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각자를 괴롭히던 고민들을 눈앞에 보이는 바다에 서서히 집어넣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각자의 고민이 바닷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우리는 그 장소를 떠나올 수 있었다.


그전과 후에도 여러 여행지를 다녀왔었고 송도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1년 정도가 지난 지금. 누가 나에게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여전히 송도를 1, 2순위로 꼽는다. 단순히 풍경이 아름답고 먹거리가 많아서 내 기억에 남는 여행지 순위에서 계속해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이 특별했기에 왜 그렇게 그 장소가 기억에 남은 것일까. 과연 한 사람의 기억에 남는 여행지란 어떤 것일까. 단순히 한 지역에 오래 머물렀다고 그 여행지를 기억에 남는 여행지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한참 고생을 했던 여행지를 기억에 남는다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있어서 송도라는 여행지는 친구들과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줌과 동시에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던져두고 올 수 있었던 여행지였다. 푸르디푸른 하늘. 곧고 넓게 뻗어있는 길에서 왜인지 모르게 느껴지는 시원함.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 바다를 바라보며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면서 나는 내 고민들을 던져버릴 수 있었고, 그렇게 송도는 내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되었다.


출처 : instagram <voyagersmap>


결국 한 사람의 기억에 남는 여행지란 나를 괴롭히는 고민이 있어도, 그런 고민쯤 잠시 던져두고 올 수 있는, 그런 곳이지는 않을까. 


여행지에서 어떤 경험을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내 고민들을 제쳐둘 수 있는 그런 곳. 그렇게 고민을 제쳐두고 오는 그 여행지가 국내이건, 해외이건, 혹은 단순히 집 앞이 되었건, 순례길이 되었건, 어디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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