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아픔에 '그 정도'라는 묘한 비웃음을 섞어 보내면서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텝으로 일할 적에, 같이 일하던 동생이 손가락을 움켜쥐고선 내게 온 적이 있다.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손가락을 찧었는데 피가 너무 많이 나와요. 지금 머리가 핑 도는데 어떡하죠 형?" 살펴본 동생의 손가락엔 약간의 찢어진 상처가 존재했다. 지혈하고 소독만 잘하면 금방 아물 수 있는 상처였다. 그럼에도 심각한 표정으로 온갖 걱정을 하고 있는 동생을 보며 나는 귀여워서인지 웃겨서인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비웃음을 살짝 지었다.
"별거 아니긴 한데 꿰매야 흉터 없이 깨끗하게 나을 수 있을 거야.
어떻게 할래, 형이 소독해줄까 병원에 갈까?"
그렇게 동생을 응급실로 데려다 주기 위해 한밤중에 차를 이끌고 나섰다. 가는 길에 나는 여전히 웃음을 지으며 "괜찮아. 진짜 별거 아니야. 그거 조금 찢어진 거 가지고 뭘." 했다. 울먹이던 동생은 자신은 이런 상처가 난 경험이 전무하다며, 어지러움이 느껴지던 순간 온갖 불안함이 엄습해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이러한 부류의 상처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한 때가 언제였을까. 내가 23살 첫 연애에 실패했을 때, 할 수 있다면 지금의 고통을 수만 개의 종이비행기에 적어 날려 보내고 싶었을 때, 곁에 있던 모태솔로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야, 그냥 소주 한 잔 마시고 털어버려." 그렇게 쉽게 털어질 마음이었다면 나라고 이런 궁상을 떨고 싶었을까. 내가 겪는 순간, 특정 대상은 나만의 경험이 된다. 그 누가 온갖 형용사를 붙여놓아도 결국 대상의 본질을 결정짓는 건 나 자신의 경험이다. 그렇기에 상처 또한 발발하는 시기와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그 정도'라는 말을 붙이기엔 너무 복잡한 존재이다. "그 정도도 못 버텨?" "뭘 그 정도 가지고..."
사실, 나에게는 작은 아픔이 누군가에겐 큰 아픔이 된다는 걸 나는 꽤나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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