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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Jul 04. 2019

오키나와 소녀

여행지에서 만난 푸른 하늘 같은 선의를 기억하며


#1 오키나와

재작년, 휴학을 앞두고 친구들과 오키나와 여행을 계획했다. 




 처음 이 여행을 계획한 친구는 H로, 나름의 결단력을 발휘해 우리를 끌어들였다. 나는 운 좋게도 당시 학기에 근로를 하고 있어 무리 없이 여행경비를 모을 수 있었다. 오키나와 여행은 사실 내게 단기 어학연수로 다녀온 중국 외에 처음 있는 해외여행이었다. 그렇지만 예상외로 크게 걱정도, 설렘도 느끼지 않았다. 어쩌면 준비하는 내내 현실감각이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키나와에 도착한 후, 수도 없이 펼쳐진 일본어를 보는 와중에도 내가 오키나와에 서있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숙소를 눈앞에 두고 한 시간 동안 헤매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 도착해서야 나는 외국에 나와 있음을 강하게 느꼈다. 사실 길을 헤매는 건 내게 일상과도 같은 일이라 힘든 축에도 들지 않았다. 다만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에 꽤 큰 당혹감을 느꼈다.  


길을 헤메는 와중에 보이는 풍경이었다. 보이는 건 푸르름 뿐이라 오키나와의 색을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둘째 날,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날짜는 정해져 있고 서로 보고 싶은 장소가 달랐기에 두 명씩 나눠서 여행하기로 했다. 나와 H는 카츠렌성을 구경하고 나하나라는 지역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버스를 잘못 타서 종점 같은 곳에 도착하고 말았다.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던 우리는 교양으로 잠시 배운 일본어를 겨우겨우 사용하여 지나가던 한 소녀에게 나하나 가는 버스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질문을 했어도 답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는 열심히 설명해주는 소녀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영어를 사용해보기도 했는데 소녀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버스 노선표를 읽어 보려 하고, 인터넷으로 버스 노선을 검색하기도 했는데, 그러던 찰나 그 소녀가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우리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고 핸드폰에는 소녀의 지인이 메시지를 통해 영어로 나하나 가는 버스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소녀가 우리를 도와주려 영어를 아는 지인에게 부탁한 듯하다. 소녀는 우리가 버스를 타기 전까지 기다렸다가 버스가 올 때 이 버스라고 손짓하며 우리를 태워 보냈다. 우리가 버스에 앉았을 즘, 소녀는 그제야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듯했다.  


소녀를 뒤로한 채, 버스에 앉았다. 종점이라 널널한 버스에 앉아 나름의 훈훈함을 즐겼다.


 지금 생각하면 버스를 잘못 탔던 상황이 이 여행을 좀 더 오래 기억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오키나와 여행 중에 체해서 병원까지 갔다 온 기억을 빼놓을 순 없지만, 소녀를 만났을 때 사람의 선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계기가 되어 더 기억에 남는다. 만약 길을 잘 찾았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 일본인과 대화를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손짓, 발짓, 단어 하나로 간신히 이어온 대화이고 그 장소에 없는, 영어로 메시지를 보내준 다른 이가 우리 사이에서 대화를 이어나가 줬지만, 소녀는 끝까지 우리가 맞는 버스를 탈 수 있게끔 기다리고 찾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선의가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외국인이고, 여행자이며 그 소녀에겐 낯선 이다. 그런데도 소녀는 포기하지 않고 우리에게 설명하고 알려주려 했다. 단순히 그녀는 우리가 미안하다고 말할 때 지나쳐 갈 수 도 있었고, 우리가 그 소녀에게 처음 물어볼 때 잘 모르겠다고 할 수 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선의가 더 크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요청에 의심부터 품었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고민하며, 나는 때때로 그 소녀를 기억한다. 도와달라는 목소리를 가끔 그냥 지나치지도 못한다. 그때의 너무도 푸른 하늘과 같은 선의가 내게 왔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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