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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Jul 04. 2019

당신은 아이의 눈물을 견디는 일에 익숙한가요?


 잘 지내고 계십니까 형님. 저는 작년 여름에 시작한 봉사를 아직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두 번의 봄이 피고 지었습니다. 그새 몇 명의 아이들이 졸업을 했고, 그새 몇 명의 아이들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왔지만 그중에 한 아이는 아주 영리하고 사랑스럽기까지합니다. 신발주머니에서 갖 꺼낸 신발을 벗고는 금방 제게 안녕하세요 선생님, 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어린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하는 흔한 행동들에 생글생글 웃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의미 없는 웃음 말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배려하여 짓는 웃음 말입니다. 이 아이의 웃음을 편지로 부칠 수만 있다면 형님께 수만 번의 우편을 부치고 싶을 정도입니다. 또래 아이들은 아직 무엇이 잘못인지 알아서 판단하기 어려워하는데, 무엇이 잘못인지 알고 행동하는 아이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아이 덕분에 다이어리 날씨 란에 매번 웃는 해님을 그려놓곤 합니다. 그렇게 3월부터 6월까지 저는 따뜻한 햇살을 쬐고 충분한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학교 종이 울리는 시간, 그러니까 아이들은 모두 돌아가고 종소리 혼자 먼 여행을 떠나 우리 센터 앞에 착륙하는 순간에 말입니다. 아이들의 신발주머니는 각각 다른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희정이의 것은 잘 닦인 가죽을 뽐내며 그네를 타며 오고, 태균이의 것은 상처에 발길질을 당하며 옵니다. 그리고 제가 접때 자랑했던 소민이의 것은 때는 꼈지만 제법 빳빳한 모양새로 센터에 당도합니다. 보드랍고 작은 손에 들려왔다가 해가 지고서는 굳은 살 잔뜩 박힌 흙 묻은 손에게 들려가고는 하지요. 그 굳은 손을 보면 소민이 신발주머니의 모양새가 그러한 것에 고개가 주억거려지곤 합니다. 핏기 없고 주름진 미간과 피곤에 찌든 눈, 하지만 눈치 없이 굳센 손에는 사랑이 담겨있었거든요. 먼지가 묻어 있었지만, 꼿꼿한 감정 또한 묻어있었거든요.




 제가 봉사를 시작한 지 세 번째 여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방학 또한 다가오고 있습니다. 헌데요 형님, 저는 이번 여름이 반갑지 않습니다. 소민이의 미소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민이 곁에 있던 굳센 손이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님이 사는 곳의 천사들은 안녕합니까? 이쪽의 천사는 뼈만 남은 날개를 펄럭이는데 말입니다.




 혹시 죽음에 익숙하지 않은 청년이 어떤 표정을 지어내는지 아십니까 형님? 눈꼬리는 살짝 내리고 입은 앙다문 채로 망부석이 됩니다. 단 하나 망자의 흔적을 바라보는 눈동자만은 흔들리고 있는 채로 말입니다. 이것이 맞는 표현인 줄은 모르겠다마는 그런 이들은 하얀 눈을 씹어먹었을 때처럼 애매한 표정을 짓고는 합니다. 헌데요 형님, 저 아이는 왜 아직도 녹아버린 눈사람처럼 축 늘어져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저 아이의 신발주머니는 왜 빳빳함 없이 축 늘어져있는 걸까요. 작년 여름, 제가 짓던 표정을 대체 왜 저 아이가 짓고 있는 걸까요. 형님은 제 표정을 수도 없이 보시지 않았습니까. 형님은 천사의 표정을 항상 관찰하시지 않습니까. 6월까지 쨍쨍하던 햇살은 왜 비가 되어 내리고 있는 것이고 6월까지 쨍쨍하던 수민이의 미소는 왜 돌이 되어 가라앉았냐 말입니다. 아마 당분간 저는 편지를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형님께서 비를 멈춰주실 때까지 당분간은 두 손 모으는 일 하지 않으렵니다. 그동안 건강히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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