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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Jul 04. 2019

사람이 기억나는 여행

학창 시절, 사람으로만 명명되던 졸업여행을 떠올리며


#2 졸업여행

당신에겐 오롯이 사람만 기억나는 여행이 존재하나요?
  


 은하수만이 흘러 강이 되고, 바람이 지쳐 귓가에 몸을 뉘던 밤. 가장 화려했던 정경이었지만, 제 눈은 어쩐지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 손에는 장미꽃 하나가 들려있었습니다. 줄 타이밍은 놓친 지 오래, 어느새 장미꽃은 어둠에 색을 빼앗겨 있었죠. 그래서인지 저는 아직도 그 장미의 색을 알 수 없습니다. 노란색이었는지, 붉은색이었는지 말이에요.


 때는 졸업여행이었습니다. 중학교 졸업여행. 저는 이 여행이 지독히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여행이 끝나고, 방학이 지나 새싹들이 눈치 없이 푸른빛을 띠며 피어날 때면, 전 그 애와 아주 멀리 떨어지게 될 테니까요.


 졸업여행 장소는 산속의 어느 캠프장. 친구들은 여행에 무슨 캠프장이냐며 불만이 많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전 그곳이 썩 마음에 들었습니다. 푸른 숲과 흐드러진 들판의 모습이 그 아이와 꽤나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늘은 그 아이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 이렇게 그 애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워, 저는 그 애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은 장미꽃. 그 애와 쏙 빼다 닮은 꽃이었죠. 그 애는 늘 빛이 나던 아이였습니다. 햇빛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 늘 씩씩하고 밝으며, 못하는 게 없는 아이였죠. 조금 날카로운 성격 탓에 그 아이를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 아이의 화려함에 금세 빠져들곤 했습니다. 마치 장미꽃처럼 말이에요. 그에 비해 나는 작고 초라한 안개꽃. 너무나도 평범했습니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는 그런 아이. 원래 빛은 어둠이 있어야 그 존재를 더 발하는 법. 제 초라한 모습은 그 애를 더 밝게 비춰주었습니다. ‘꽃다발 같아.’ 장미꽃을 장식하려 옆에 몇 가닥 붙여놓는 안개꽃을 떠올리며, 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몰래 키득거렸습니다. 꽃이 뭉개질세라, 장미가 든 가방을 조심스레 끌어안고 말이에요.



 고기를 구워 먹고, 텐트를 세우며 분위기는 한참 무르익어 갔습니다. 방학 계획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가서도 연락 끊기지 말자는 터무니없는 약속을 하면서 알이에요. 그 와중에도 제 시선은 계속 그 아이에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애는 정작 저에게 관심도 없는데 말이에요. 잠시 후, 쉬는 시간을 가지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이때다!’ 싶어 가방에 있던 장미꽃을 꺼내 들었죠. 고개를 드는 순간, 그 아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당황한 저는 그 애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장미꽃 가시에 손이 찔리는 줄도 모르고 꼬옥 잡은 체.


 한참을 찾았을까요, 저 멀리 강가에서 그 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기뻐 달려 나가려던 순간, 저는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익숙한 그 아이의 옆모습, 그 사이에 느껴지는 왠지 모를 기시감. 늘 나를 보지 않는 그 아이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었던 건지. 제대로 보고야 말았습니다. 어쩌면 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저는 그 이상 그 아이에게 걸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야 손에 생긴 상처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시에 찔려 엉망이 된 손. 그에 흐른 핏방울이 장미꽃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날의 여행을 원망합니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그 애 모습이, 어쩐지 상처로 남아버리게 된 것 같으니까요. 상처는 사람을 성장하게 해 준다던데, 저는 어째서인지 조금도 자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제 시선은 그 날의 그 아이에게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자기를 좀 보라며 쓰르라미가 목이 터져라 울었지만, 그 어떠한 소리도 저를 방해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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