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상품 Jul 07. 2019

향이 깊게 배는 여행에 대한 고찰 : 고생에 대하여

우리는 그 날 비에 흠뻑 젖었다


#미니 전국 일주

강원도에서 전주로



 살면서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종종 있다. 그중에서도 여행과 관련된 것이라면 역시 ‘힘든 여행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더욱 굳힌 여행이 있었는데, 그 여행은 바로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떠난 강원도 여행이다.




 아니, 말이 강원도 여행이지 실상은 미니 전국 일주라고 봐도 무방한 여행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2013년 여름의 초입이었다. 당시 나와 친구들은 방학을 맞이해 강원도 투어를 떠나기로 계획했었다. 강릉, 속초, 춘천 이 세 도시를 둘러보며 맛있는 것을 먹는, 말 그대로 먹부림 여행을 떠나기로 했었다. 그렇게 각 도시별로 맛집을 알아보고, 관광명소를 찾으며 완벽하게 계획을 짰다고 생각한 우리는, 여행 전날에 모여 무사 여행을 기원하는 맥주파티를 벌였다. 하지만 맥주파티를 하던 우리의 귀에는 여행 당일부터 강원 지방에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들리지 않았다.




... 요즘 계속해서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장마가 시작되기 전 더위를 식혀줄 반가운 비 소식입니다. 바로 내일부터 서울과 강원 지방에 많은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


 여행 당일, 우리는 정동진으로 해돋이를 보기 위해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딘지 모르게 신이 난 우리를 태운 기차가 출발하는 순간, 창밖으로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러한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그래도 해돋이는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불안함을 감추려 노력했다.


폭우로 흐려진 시야 속에 꺼내든 카메라. 괜찮아질거라는 희망을 품고 도착 인증샷을 찍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는 해돋이를 보기는 했다. 다만 그날 해를 본 것이 해가 뜨는 10분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그날 여행은 어땠냐고?


 우리는 생애 처음으로 가본 강릉을 차도 없이 돌아다니며 하루 종일 비를 맞기에 바빴다. 심지어 잔잔하게 내리는 비도 아니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우리는 온몸이 젖은 상태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결국 여행지를 바꾸기로 결정했고, 우리와 같은 날 전주로 떠난 친구들에게 그곳은 비가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으로 향했다.


우리는 운좋게(?) 우리만의 해돋이를 즐겼다. 단 10분 뿐이었지만.


 결론적으로 비와 함께 시작한 이 여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물론 전주로 향한 이후에도 여러 사건 사고가 터지고 다시 부산으로 이동해서도 별 특이한 고생을 하는 등 별의별 일들이 가득했지만...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니 이렇게 그때를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는 거겠지. 그때 모든 여행이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다시는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여행을 떠나지 말자고. 오지 탐험처럼 익스트림이고 뭐고 뼈 빠지게 고생하는 여행은 절대 떠나지 말자고.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더 기억 속에 남는 것 아닐까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서 이런 여행 따위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며 몸서리를 쳤는데, 이상하게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 넷은 입을 모아 그만한 여행이 없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기차를 타고 가며 철없는 농담으로 밤을 지새운 것, 정동진에서 잠깐이나마 본 일출의 광경.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인심 좋은 아주머니, 비를 맞으며 아무도 오지 않기에 쓸쓸해 보이던 오죽헌... 그 모든 풍경들이 오히려 기억에 오롯이 남아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우리는 참으로 무모한 여행을 계획했었다. 날씨도 확인하지 않고선 장마가 코앞인 상황에서 여행을 가기로 하지를 않나, 차도 없으면서 일단 강원도를 가보자고 계획해보지를 않나... 사실 어쩌면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런 무모한 여행을 계획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알 거 모를 거 다 알게 된 지금이라면? 지금 그때처럼 여행을 떠나자고 한다면 우리 중 그 누구라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어쩌면 힘들었던 여행이, 말도 안 되게 고생한 여행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그것이 그때에만 겪을 일이기에, 그때에만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 아닐까. 좌충우돌하며 고생한 그 일들이, 그 기억들이,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깨달아 버리기에. 그렇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그 기억들을 더 머릿속에 남기고, 더더욱 그만한 여행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하지 않을 여행. 어쩌면 그때만 할 수 있는 여행이기에. 고생을 하고 돌아와 한참 뒤에야 그 추억을 떠올렸을 때 어딘지 모르게 추억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 들어서, 그 여행이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청년상품의 발자취

https://www.instagram.com/mongeum/

https://steemit.com/@hyeonowl


작가의 이전글 낯선 사람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눈다는 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