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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Jul 23. 2019

여행은 평소에 없던 내 뻔뻔함을 즐기게 해주니까

낯섬의 즐거움에 취하기 위해 여행에 목마르게 된다


#6 주는 여행

낯섬이 주는 기시감을 이기고 새로운 만남을 가졌을 때


 여행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어떤 결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 그 중에 하나는 자유라는 단어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여행은 일상 위에 부유하는 꿈 속 고래로 존재하고는 한다. 일상을 지루한 자기계발서라 하면 여행은 장 중간 중간에 존재하는 에세이, 색인과 같은 존재이니까. 그래서인지 사람마다 선호하는 여행도 달리 나타나곤 한다. 우리 모습을 책으로 만들면 전부 다르듯이 여행도 각자의 글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 vs 같이 떠나는 여행, 고생하는 여행 vs 휴양하는 여행, 그리고 국내여행 vs 해외여행

 나는 그 중에서도 혼자 떠나는 여행, 고생하는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내 이상형을 굳이 설정해보라면 그렇다. 그래서인지 내 첫 해외여행은 동남아로의 선교여행이었고 내가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은 자전거 국토종주였다. 그리고 지금 꿈꾸고 있는 여행도 유럽 자전거 배낭여행이다. 여태 질문을 통해 수집한 표본이 적긴 하지만, 보통 다른 사람들과 나의 여행의 이상향은 잘 맞지 않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힘들었던 일상의 피로를 떨쳐내고자 떠나는 여행인데, 되려 고생하러 간다니 내 이상향에 고개를 주억거려준 사람은 거의 없다. 


같은 타입의 여행자와 만나는 건 축복이다

 

 고등학교 2학년 방학 때 떠난 국토종주가 특히 그러했다. 7월 여름방학 때였는데, 출발 당일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산뜻한 출발이었다. 새로 산 로드자전거와 땀 흡수가 잘 되는 자전거복, 그리고 잠옷과 세면도구, 정비도구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길을 떠났다. 보통 자전거 국토종주를 한다고 하면 아라뱃길에서 낙동강으로 향하는 루트를 택한다. 하지만 나는 때마침 낙동강 종주를 한다는 친구들과 함께하기 위해 안동에서 부산으로 갔다가 다시 안동으로 점프하여 위로 올라가는 루트를 택했다. 아무래도 고등학생이다보니 처음부터 혼자 시작하기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총 389km의 낙동강 종주길 : 출처_국토교통부


 총 389km, 종주기간 4일, 낙동강 자전거길을 달리며 청소년 수련관, 길 가다 들린 식당, 편의점 등 우리는 폭염에 지쳐 낮잠을 곧잘 자곤 했다. 우리가 낮잠을 잔 공간들을 보면 유추할 수 있는 점이 있다. 고생하는 여행을 하다보면 염치가 없어지곤 한다는 점이다. 물론 양해를 구하고 하는 행동들이긴 하지만, 평소에는 할 수 없던 부탁들을 이 때는 곧잘 하곤 한다. 마감일이 근접해가면 그제서야 시작하는 숙제처럼, 살기 위해 뻔뻔해지곤 한다. 그리고 그 뻔뻔함은 낯선 이의 인정과 새로운 인연으로 돌아오곤 한다. 서울에서 겪었던 것과는 이상하리만큼 다르다. 땀 줄줄 흘리며 지친 모습이 측은지심을 일으키는 걸까, 고생이 뻔뻔함으로, 뻔뻔함이 인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꽤나 자연스럽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이것만큼 선명한 추억이 되는 일이 없다.

 

 필리핀으로 선교여행을 떠났을 때도 그렇다. 


 필리핀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선교원으로 가서 5일 동안 지낸 적이 있다. 그 때 지역 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준비한 적이 있는데, 나는 거기서 홍보를 담당했다. 동료 대여섯명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초대권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연극을 준비하고 음식을 나눠주는 일은 꽤나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낯섬이 주는 기시감을 떨쳐내고 호감을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호감을 주기 위해 온갖 표정과 몸짓을 보여주며 지역 주민들과 대화했다. 경계심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친근하게 악수하며 참석을 약속하는 사람도 있었다. 길을 걷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뒤돌아보면 앳된 아이가 내 가방을 뒤지고 있는 시골 마을, 호기심과 도덕적 기준이 달리 존재하는 그 곳에서, 미소만은 여전히 강력한 무기가 되곤 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이 있다면, 고생하는 여행의 두 번째 타입인 주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새로운 두려움과 미소가 공존하는 초등학교 입학식같은 모험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요소는 다양하다. 새로운 풍경, 사람,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 걱정 없이 잘 수 있는 공간 등. 그 중에도 우리가 평소에는 참았던 행위들을 할 수 있다는 게 여행이 지니는 가장 큰 색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펼칠 수 있는 빈 종이를 하나씩 끼워두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이 있기에 공간이 존재하고, 공간이 있기에 여행을 꿈꾸게 된다. 우리는 사람 속에 살면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목적성을 띈 고난 여행은 최적의 여행이다. 내가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모습으로 우연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한 번쯤 낯선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가져보고 싶다면, 한 번쯤 길 가다가 식사를 대접받고 대접하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흰 종이를 맘껏 더럽혀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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