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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Aug 08. 2019

배려가 쥐어주는 무의식속 무기

 너에게 다 맞춰주고 있잖아.


 네가 언젠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나. “너에게 다 맞춰주고 있잖아.” 확장된 동공과 거친 숨소리, 과장된 손짓. 너의 모든 행동과 말에 나는 어떠한 말도 어떠한 행동도 할 수가 없었지. 사실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생각도 하지 못했어. 그 상황이 너무 어이없었거든. 너는 늘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고 했어. 하지만 나는 너의 의견도 듣고 싶었어. 그래서 늘 물음표를 던지고는 했어. 늘 반복되는 패턴의 대화였지. 


반복은 언제나 지겨움을 가져와.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의 질문은 그저 형식적인 것이 되어버렸어. 내 질문이 형식적이 듯 너의 대답 역시 형식적인 대답이 되었지. 그래서 우리는 늘 내 위주가 되어버린 거야. 네가 늘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고 말했기 때문에.


 언제부터 너는 그렇게 생각했을까? 모든 내 위주라고 생각한 게 언제부터였을까? 네가 한 말로 인해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된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생각했겠지? 나는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오해를 받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였어. 나는 너를 늘 받아주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으니까. 아니다. 나는 너를 늘 귀찮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어.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단정 지었고, 단정은 미움으로 미움은 증오로 커져버렸어.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이 되어버린 거야.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어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어. 하지만 전조는 전조일 뿐이야. 음악이 전조되어 흘러가면 처음은 어색하지만 곧 전조된 음악에 적응하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잖아. 상황도 마찬가지겠지. 우리는 그저 ‘그런가 보다.’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갔을 거야. 그리고 어느 날, 화산은 폭발하지. 예고도 없이.


 나의 무기와 너의 무기는 달라. 레벨은 같아도 기능은 다르지.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어. 하지만 결국 게임은 끝나는 것처럼 상황은 끝나겠지. 다만 게임과 다른 건 ‘WINNER’와 ‘LOSER’를 결정할 수 없다는 거겠지. 서로가 가진 무기가 다르듯 우린 다른 사람이야. 그래서 어디서 상처를 받았는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알 수 없어. 그저 가늠할 뿐이야. 그렇기 때문에 누구 하나 운을 떼지 않지. 

 

 “미안해.” 이렇게 글자로 쓰면 참 쉬운 말인데. 진심을 담아 말하는 건 왜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어. 아니다. 왜 그렇게 말하기 싫은지 모르겠어. 네가 먼저 말했으면 좋겠어. 네가 먼저 고개 숙였으면 좋겠어. 너에게 먼저 사과하기 싫어. 자존심 세우지 말라고 말하고 싶겠지. 내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지금 나에게 자존심 세우고 있기 때문에 먼저 말하지 않는 거잖아. 서로의 잘잘못을 그래프로 그려 따질 수 있다면, 우리 둘 중 누가 사과를 하는 게 정답인지 알 수 있다면, 그게 만약 너라면 너는 나에게 말할까? 그게 만약 나라면 나는 너에게 말할까? 하지만 이런 생각이 전부 무슨 소용인가 싶어. 결국 나는 말하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너에게 등 돌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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