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과 과식 그리고 수동적 노동 간의 상관관계
*상기 커버 사진은 유튜브의 한 장면을 캡처한 것이며 본 글의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을 알립니다.
과식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 떠올려본다면 유치원 때. 굳이 누군가에게 탓을 돌려야 한다면 부모님을 탓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손이 컸던 어머니. 어머니는 밥그릇, 국그릇 같은 식기에 있어서도 아이와 어른의 차이를 두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어머니가 먹는 국그릇으로 국을 먹었고 아버지 밥그릇에 담긴 만큼의 밥을 먹었다. 나는 또, 음식을 남기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 이것은 아버지에게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내가 기억이란 걸 하기 시작한 때부터 우리 집은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식사하기 전 자주, 쌀농사 짓는 농부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을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수확한 채소들이 요리되어 상에 올라올 때도, 역시 감사한 마음으로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주는 음식을 항상 남기지 않으려 노력했고 실제로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물론 어머니의 좋은 음식 솜씨 탓도 있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훈련된 탓인지 나는 음식을 꽤나 많이 먹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아직도 음식을 남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여자 친구가 음식을 남길 때면 그것들은 내 차지가 되곤 한다.
과식하는 습관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게다가 요즘엔 과식을 줄이는 것이 더 힘들어졌는데 바로 먹방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먹방 콘텐츠들을 접하는 시간이 늘수록 과식도 늘었다. 나는 매 끼니때마다 과식하는 편이지만 간식이나 야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 먹방에 나오는 음식을 시켜먹을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시킨 음식을 먹고 나면 드는 감정은 대부분 후회다. 배달음식들은 맛이 대부분 자극적인데 나는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먹다가 쉽게 질린다. 양도 혼자 먹기엔 많아 남길 때도 많다. 그리고 전에는 과식하고 야식을 먹고 해도 아침에 일어나는데 무리가 없었는데, 이제는 저녁을 조금 늦게 먹어도 아침에 부대낀다.
이렇게 후회하고, 질리고, 남기고, 다음날 부대끼게 만드는 과식의 원인인 먹방을 나는 왜 계속 보는 것일까.
답은 내 생활패턴을 생각하며 유추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퇴근 후 먹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피곤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씻지도 않고 누워 유튜브를 켠다
-먹방을 본다
-먹방에 나오는 음식이 맛있어 보인다
-시켜먹는다
-후회한다
요즘 자주 일어나는 내 후회의 순환과정.
그럼에도 나는 왜 먹방에서, 그리고 야식을 반복할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먹방을 보고 항상 야식을 시켜 먹지는 않았다.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으로 끝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대리만족으로 끝나지 않을 때,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답이 빨리 떠올랐다.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바로 일이 너무 힘들었을 때. 그날의 일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을 때. 나는 먹방과 야식 같은 먹는 ‘행위’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다.
어쩌면 먹방은 과식의 원인이 아니라, 내 마음속 공허함의 결과는 아닐까. 일터에서 철저히 수동적인 부품이 되어 일하다 집에 돌아온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가만히 앉아서 먹방을 과식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공허라는 구멍에 먹방과 음식이라도 채워야 공허함을 잠시 잊고 다음날 출근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농사를 짓던 때의 부모님은 그들이 하는 일에서 소외되지 않았다. 그들 노동의 결과물인 농작물을 팔아 돈을 벌었고 그것들을 요리해서 먹기까지 했다. 어릴 적 내 기억 속 부모님은 건강해 보였다. 아마 나도 건강했으리라. 먹방을 과식하는 요즘. 나도 그때의 부모님처럼 주체적으로 내 힘을 들여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된다면 먹방을, 아니 과식을, 아니 내 마음속의 공허함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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