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인 문장을 품고 매일 다른 정의 내리며 살아가리라 결심한다
청춘이라는 단어 뒤에 어떤 말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까. 다양한 말들이 청춘이란, 을 완성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이입시킨다. 그렇게 아프니까 청춘이고, 느닷없이 찾아온 청춘이며, 적응하지 못한, 어느 날 사라진 청춘이 된다.
내가 스스로를 청춘이라는 단어에 이입한 적이 언제쯤이었을까. 20살, 그저 숫자에 불과한 나이가 마치 대단한 것처럼 들떠있었다. 하지만 20살은 인생의 시작이었고, 남들처럼 청춘의 시작이라 생각했다. 청춘의 시작은 뜬눈으로 지새우는 수많은 밤이었고, 스스로 살아가야 함을 아는 것이었고, 내 앞에서 쏟아지는 폭포수를 담아내지 못해 그저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나이는 다 그래, 다들 그렇게 살았어. 시간 지나면 그때가 가장 그리울 거다.’
청춘을 지난 사람들은 청춘 걷고 있는 지친 청춘에게 말한다. 그렇게 그들은 인생 선배가 되고, 그들의 말은 답이 되고, 처방전이 된다. 하지만 나는 처방전을 받고 약을 지어먹지 않았다. 그들의 처방전은 그들의 처방전이지 나를 위한 처방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감하는 척했지만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감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 청춘이라는 집단에 속하지 못할까. 소외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러한 생각을 지나쳐 스스로를 소외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나는 청춘이라는 단어에서 발을 뺀다. 그리고 나만의 문장을 완성시키려, 나만의 단어를 정의하려 생각의 생각을 꼬리 잡는다. 끝나지 않는 이 꼬리잡기를, 이 게임을 끝내지 않으려고 다짐한다. 미완성인 문장을 품고 매일 다른 정의 내리며 살아가리라 결심한다.
내 삶을 어떻게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내 삶을 어떻게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누군가가 정한 문장과 단어로 인생을 살아가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나만의 단어로, 나만의 문장으로 정의 내리며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니까. 하지만 꼭 단어를, 문장을 완성시키지 않아도 된다. 시간은 계속 걷고 있으니까. 꼭 그 걸음에 발을 맞추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청춘이란, ’은 버리고 ‘오늘의 나는,..’이라는 문장을 매일 한 문장, 한 문장 완성시키면 어떨까. 청춘이라는 단어는 버리고, 미소, 하늘, 달 등. 내가 좋아하는 단어로 나를 정의하면 어떻까. 그렇게 완성된 문장들은 그렇게 나를 정의한 단어들은 어느 날, 내 시간이 도착선 안에 발을 들인 날, 한 권의 책처럼 완성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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