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말하지 않아요
잠들지 못한 밤, 나는 전화기를 들고 새벽 내내 통화를 했고 우리는 마침표 찍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한숨과 침묵으로 이어갔다. 위로의 말을 전하거나 함께 욕을 해주며 우리는 그 새벽, 서로에게 깊이 잠들었다.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야?”
어느 날, 나에게 날아든 비수는, 10점. 정확히 명중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왜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하는 건지. 앞뒤 상황과 내가 한 말들 그리고 네가 한 말들을 전부 곱씹어 보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야?”
보이지 않는 한숨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아득해져 갔다. 텍스트로 주고받는 말들 속 감정은 숨바꼭질하듯 찾을 수 없었고, 나는 ‘못 찾겠다. 꾀꼬리.’, 수없이 되뇌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하지 않은 말들은 없었잖아. 그런데 지금 네가 말하는 이 상황을 나는 모르고 있었고, 네가 앞뒤 상황 없이 ‘그냥 괜찮았어.’라고 하면 나는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네가 나에게 원하는 대답은 뭐지?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네가 나를 이해해 줄 때까지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까?’ 뇌세포 한줄기마다 한 가득 변명거리가 맺혔지만, 내가 내뱉은 건 결국 변명은 아니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하지 않은 말들은 없었지만, 내 모든 상황과 감정들을 너한테 다 말할 수는 없는 거잖아...”.. ‘감정 쓰레기통이라니? 내가 너를 그렇게 생각해서 너에게 그 많은 이야기를 했겠어? 너는 내 이야기를 듣는 게 싫었던 거야?’
말을 마치지 못했다. 혹여나 내 말이 너의 생각일까 두려웠다. 그래서 깜빡이는 커서를 되감았다. 커서는 몇 번이고 층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우리가 마침표를 찍을 수 없었던 그 새벽 깊은 밤처럼 우리의 대화창 속 어디에도 마침표를 찾을 수 없었다. 점점 지쳐갔다.
하지만 우리 둘 중 어느 누구도 먼저 ‘미’를 치지 않았다.
- 자존심
- 자존심
- 자존심
- 자존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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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이어진 대화 뒤에 숨은 건 결국 ‘자존심’이었다. 지고 싶지 않았던 건지. 먼저 위로받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 대화가 ‘자존심’이라는 것은 그냥,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2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3년 전 틀어진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연락한 2년 전 그날. 나는 우리가 그리웠다. 그렇게 3년을 망설였고, 그래서 먼저 ‘미’를 쳤다. 너는 당황했지만 받아주었고, 다시 마주한 우리는 3년이라는 시간을 잊은 듯 서로를 보고 웃었다. 그날 밤 우리는 또 서로에게 깊이 잠들었다. 그러나 다시 원점. 우리는 마치 이쯤에서 틀어져야 하는 톱니바퀴처럼 또 삐그덕거렸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번에는 네가 먼저 사과하면 안 돼?’
그렇게 또 3년이 지났다. 3년 전 대화에 마침표는 없었다. ‘다음에 이야기 하자..’ 라는 말이 마침표를 대신해 그렇게 마침표를 찍은 것인지. 아니면 또 각자의 손에 새로운 톱니바퀴가 쥐어질지.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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