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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Nov 16. 2019

오늘도 그냥, 에라 모르겠다

인생을 함부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나는 정말 모르겠다

'무엇'을 찾기 위해 떠난 날이 있었다. 뜻하는 바가 없었고, 그저 내가 '무(無)'이기를 바라며 살아가던 날들이 이어졌다. 늘 '무엇'을 쫓으며 살았는데, '무엇'이 사라지고 나니 스스로를 '한심'이라는 단어에 앉혔다. 그래서 다시 '무엇'을 찾기 위해 떠났다. 모아놓았던 돈을 전부 다 쓰고 돌아오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한달 후, 나는 정말 '무엇'을 찾아 떠났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독일 베를린 테겔 국제 공항이었다. 유럽여행은 세번째라 가고 싶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내 손에는 핸드폰이 있고, 내 핸드폰에는 구글맵이 있으니. 숙소와 교통, 완벽한 준비를 마치고 떠나왔기에 나는 조금은 느슨한 계획 안에서 자유롭게 여행을 하면 됐다. 그렇게 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목적을 잊었다. '무엇'을 찾으리라 다짐하며 떠났던 여행은 '무엇'을 생각할 겨를 없이 흘러갔다. 가고싶은 곳도 많았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았다. 쏟아지는 정보안에서 원하는 것만 선택하는 거로 나는 오직 여행만 생각했다.


여행 9일차 잘츠부르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고 예약한 숙소는 지저분하고 돈은 점점 바닥이 났다. 화면으로 보았던 아름다운 미라벨 정원은 흐린 날씨를 배경으로 그려진 우중충한 정원에 불과했으며 맛집이라고 찾아 간 레스토랑의 음식은 짜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그로인해 그동안 행복했던 여행은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차 먹구름이 잔뜩 낀 여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내일은 잘츠캄머구트로 가서 산악열차도 타고 산악케이블카도 타고 유람선도 타니까 괜찮다, 라며 자위했지만 혀끝에 남은 약처럼 씁쓸한만 남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잘츠캄머구트로 향했다. 왜 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잘못된 곳에서 하차해서 한참을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걸어가야 했다. 이때부터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한참을 걸어 도착한 케이블카 타는 곳은 어제의 비와 강풍으로 운행을 중단했다. 이렇게 날이 좋은데 왜 운행을 중단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얼른 포기하고 유람선과 산악열차를 타러 걸어갔다. 매표소에서는 어제의 강풍과 비로 산악열차를 탈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거지? 짜증석인 고민이 시작됐다. 유람선이라도 탈것인지 아니면 전부 포기하고 잘츠부르크로 돌아갈것인지. 매표소 주변을 한참 서성거렸다. 그러다 유람선에서 내리는 한국분을 발견했다.


"저 혹시 유람선 타셨어요?"

"네."

"다름아니라 어제 비때문에 산악열차랑 케이블카 전부 운행을 안한데요. 그래서 유람선이라도 탈까말까 고민중이에요."

"유람선이라도 타세요! 오늘 날이 정말 좋아서 유람선 타면 정말 좋을거에요."


나는 바로 유람선 티켓을 끊었다. 유람선을 타고 포기하고 돌아섰다면 못봤을 풍경들을 보며 한결 나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가다 볼프강역에서 내려 마을을 구경하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맥주를 시켰다. 정말 맛있었다. 아무 가게나 들어왔는데 이렇게 맛있다니. 작은 행복을 느꼈다. 다시 유람선을 타고 돌아와서 그래도 이거라도 했으니 만족하자 라며 다시 버스를 타러 걸어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일인가. 머리 위로 케이블카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서둘러 케이블카 타는 곳을 향했다. 운행을 제개한것이다. 나는 바로 종종걸음으로 티켓을 끊고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정상을 정말 최고였다. 예전에 갔던 스위스의 그린델발트가 생각났다. 끊임없이 펼쳐진 알프스의 풍경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어제부터 시작된 불행들이 이 순간을 위해서였나. 이렇게 보상해주려고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게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면서 불과 몇시간 전에 있었던 불행들은 전부 잊고 행복한 생각을 이어갔다.


이렇게 여행을 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생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변수. 그 변수가 어떤 상황에 나를 놓이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저 그 변수들을 지나갔고,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저 시간 가는 대로 흘려보내면 된다. 그러다 보면 불행도 오고 행복도 온다. 이런게 그저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라는 의미를 찾으러 떠난 여행에서 비록 큰 마음가짐을 가지고 돌아오지는 못했다. 돌아와서 여전히 나는 방황했었고, 통장잔고마저 0이 되어 또다시 알바를 해야하나 라는 생각으로 구직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은 없었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러다 전공과 관련된 한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고, 기대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그러다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러 와주면 좋겠다는.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전공과 관련 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연락이 오니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면접을 보았고 6개월이 넘게 그 일을 하며 즐거움까지 느끼며 천직을 찾았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정말 모르겠다. 여행도 인생도. 내가 한 선택들이 어떤 결과들을 가져올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망설임없이 선택하고 후회없이 결과를 받아들인다. 좋으면 좋은거고, 싫으면 싫은거고, 아니면 아닌거니까. 시간은 많고, 선택지도 많으니까.


망설이던 나도 이제는 조금 덜, 망설이니까.

그러니까 모르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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