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가 되고 싶은 당사자
요즘 들어 교수님들의 입에서는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쉼 없이, 과의 장벽을 넘나들며 쏟아지고 있다. 정치학 전공의 교수님은 정치학과 인공지능을 연결하여 강의하고, 문과대 교수님은 인공지능과 인문학을 연결하여 특강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인공지능에 딱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도 이번학기에는 인공지능에 대한 강의를 유독 많이 듣고 있다. 아마 시기적으로 이젠 모두가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져야하기 때문이겠다. 다만 나의 관심은 조금이라도 인공지능의 발전을 막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정치학을 들으며 스티브 잡스와 스티븐 호킹이 다시 살아 돌아와 막아내려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시대는 발전하지 않으면 망해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호킹은 죽기 전 인류의 멸망은 결국 인공지능과 관련된 것일 거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도 그의 말처럼 인공지능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우리는 결국 인공지능에게 잡혀 먹힐 것이다.” 라며 지속적인 경고를 해왔다. 물론 비웃기도 하고, 일정부분 공감하기도 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행보가 소름끼칠 정도로 스토킹 당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경험한 일일 것이다. 혹여 내가 놓치는 정보가 있을 까봐 과한 자료들이 SNS, 유투브를 통해 전달된다, 아주 친절하게. 최근 다이어트 때문에 다이어트 식단을 검색했었는데 SNS에 들어가자마자 샐러드 배달 업체, 다이어트 도시락 배달 업체, 닭 가슴살 요리 업체 등 다이어트 식단 관련 광고가 지속적으로 올라오면서 그동안 노출되던 다른 광고들은 싹 다 사라져 있었다.
요즘 유투브를 자주 이용하는 엄마는 당신이 관심 있는 영상들이 끊임없이 추천으로 올라온다면서 내게 약간의 두려움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토킹 당하면 이런 기분일까 할 정도로 인공지능이 디테일하게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인공지능은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발전하고 있다. 바둑 기사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의 시대는 이미 졌고, 스스로 습득하고 배우는 알파제로의 시대가 왔다. 인간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인공지능 스스로 정보를 습득하고 배우고, 활용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실제로 본인이 아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폴라니의 역설이 알파고에 의해 이미 깨져버렸고, 일본에서는 불법을 설파하는 로봇까지 등장했다. 인공지능은 이미 영화적 요소라고 할 법한 상황들을 현실
에서 구현해내고 있었다.
교수님은 점차 전문직부터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아니 어쩌면 이는 예견하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무언가를 고치고 치료하고, 혹은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인간은 실수를 할 수 있고,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확률적으로 계산하고 모든 자료를 검토하며, 모든 기억을 누적의 형식으로 저장하기 때문에 오차의 범위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수치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아마 인공지능은 기억의 오류를 범하고 망각을 가진 인간에게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무소불위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막을 수 있냐고 되묻는데 지금까지 내가 배운 내용에 의하면 막을 수가 없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의 가치를 개미 정도로 정의하게 된다면 인류의 죽음은 우리가 그동안 쉽게 밟아온 개미의 죽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설득은 인류의 멸종을 한 발짝 더 당기는 일이 될 수 있고, 그들에게 씨알도 안 먹힐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본인들의 분야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종교계는 새로운 해석을 통해 과학과의 조화를 꽤하며 과학의 발전에서 드러나는 한계는 결국 종교로써 채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문계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건드릴 수 없는 감성, 철학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인문학적 ---’ 와 같은 제목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고 있다. 정치학에서는 오히려 현재의 위기를 정면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사학에서는 인간 역사의 이면을 더욱 상세하게 파헤침으로서 인류의 가치를 상승하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사회는 계속 복잡했지만 점점 더 복잡한 사회가 오고 있다. 문제를 외면하고 변두리에서 무관심한 척 힐끗거리고 싶지만, 현실은 우리의 눈앞에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분야의 박사도, 전문가도 아니라 어떤 해결책을 내고 싶은 마음도, 낼 방법도 없다. 그저 전문가들끼리의 리그를 멀리서 방관하고 싶을 뿐. 그래서 사회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은 아닌가, 조금은 죄책감이 든다. 목소리를 내면서도 실제론 그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 인간이, 인공지능이 보기에 정말 개미만도 못할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서 개미는 되지 않기 위해, 흘려듣기만 하지 말고 물어야 할 때는 아닐까 한다. 가장 위협적인 존재를 또 다시 외면한다면 어떤 역사가, 어떤 좌절이 반복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독일의 전 대통령 바이체커의 연설처럼 적어도 직시해야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 서독 전 대통령 바이체커의 연설 : 종전 기념 연설문에서 바이체커는 종전 이후 독일의 현실과 국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짐과 동시에, 당시 젊은이들의 불만을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다소 위험한 발언을 한다. 하지만 외면하는 것은 과거의 참사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하며 과거를 직시하고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그려 달라 주장한다. 그는 종전이 독일 국민들의 고통을 불러온 것이 아닌 나치가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며, 그런 나치를 선거로 뽑은 것은 독일 국민이라는 발언을 잊지 않고 다시 한 번 외면의 참사를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