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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Oct 05. 2019

오해와 자기 방관의 관계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 날 친구가 내게 그러더라. “야, 반 애들이 나보고 대체 너 같은 애랑 왜 친한 거냐고 묻데?”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반도 다르고, 계열도 다르고, 어울리는 친구들도 다르고. 어느 것 하나 겹치는 게 없는 우리 둘이 친구인 게 신기해서 그러나 보다 하고 지나쳤다, 가볍게 씹어 삼키기엔 나 ‘같은’ 애라는 조사가 조금 많이 걸리긴 했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게 붙인 꼬리표를 무시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적어도 그놈의 ‘너 같은 애-’ 질문을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한 번씩 듣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남들에 비해 잠이 많았다. 원체 지구력이 약한 데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곧장 잠으로 풀어줘야 하는 내게 학교 기숙사의 주 5일 5시간 취침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아침 여섯 시에 울리는 기상 알람에 제일 늦게 반응하는 것도 나였고, 한 주에 한 번씩은 밤 열한 시 반 점호에 자다가 늦게 나가서 사감 선생님께 등짝을 맞는 것도 나였다. 생각해보면 수업 시간에 졸기도 참 많이 졸았다.

  반면 A양은 나와는 정반대의 타입이었다. 수업시간에는 항상 동그란 은테 안경을 낀 채 맨 앞줄에서 정자세, 차분하지만 서글서글한 성격에 노력파로 소문이 자자한 모범생. 함께 몰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며 밤을 꼴딱 새더라도 다음 날 아침이면 자습실에 뻗어있는 내 옆자리에서 꿋꿋이 영단어를 외우던 친구였다. 당연하게도 문과 전교 1등은 1년 내내 A양의 차지였다. 2학년 내내 나의 룸메이트이기도 했던 그녀는 몇 없는 나의 친한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만큼 비교당하기 좋은 조합도 찾기 드물었던 것 같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데다 착하기까지 한 모범생 전교 1등, 그리고 허구한 날 자느라 바쁜 전교 2등 룸메이트라니,

     

  소문의 시작은 그것의 악랄함에 비해선 허무할 정도로 작고 사소했다. 적당히 알고 지내던 같은 반 친구가 내게 시험 이틀 전에 영어 필기를 빌려달라고 부탁한 걸 거절했던 게 계기였다. 정말 별 생각이 없었던 터라 뭐라고 대답했는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졸다 깨다 하면서 쓰느라 글씨도 엉망이고 기본적인 색깔 구분도 없이 검은 펜으로만 필기해둬서 차마 빌려주기가 미안하다고, 차라리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성실한 A양한테 가서 빌리는 게 좋겠다고. 진심으로 그 편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그뿐이었다.

  이틀 뒤 치러진 영어 시험은 평균이 사오십 점 남짓일 만큼 이례적으로 고난도였다. 영어에서만큼은 한 번도 문제를 틀려본 적 없는 A양마저 틀린 문제가 몇 개씩 있을 정도였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 시험을 다 맞은 유일한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담당 선생님들께선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며 아우성인 다른 학생들을 달랜답시고 그래도 만점자가 있었다면서 나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 잠이 많아서 수업 시간에 자주 조는 그 애, 누군가가 필기를 빌려달라고 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한 그 애, 전교 1등 A양의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만년 2등 그 애, 앞에서는 헐렁한 척하면서 뒤에서는 룸메이트와 같은 반 친구들조차 제쳐두고 자기 꺼만 챙기기 바쁜 이기적인 그 애, 매일 친한 친구들하고만 다니면서 모르는 사람들이랑은 말도 잘 안 섞는 그 애, 아, 그 애?

  순식간이었다. 나의 파편들은 이름조차 모르는 낯선 이들에 의해 제멋대로 왜곡되고 얽혀 검고 거대한 하나의 총체가 되었다. 당연히 남들이 보기에 좋은 모습일 리 만무했다. 내가 A양을 진심으로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한다든지, 낮에 한 시간을 잤다면 밤에 두 시간 세 시간 더 공부해서라도 무조건 모자란 부분을 채운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은 애초에 남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어느샌가 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머리만 믿고 나대는 주제에 주변 사람들에겐 싹수없고, 거만하고, 룸메이트에게 열등감이나 품고 있는 못되고 음흉한 애’가 되어있었다.


  생각보다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다. 면전에서 비난을 듣는 일도, 드라마 속 장면처럼 화장실 칸막이 너머로 나에 대한 나쁜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곧 사라질 줄 알았던 소문은 생각보다 오래도록 나를 쫓아다녔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우리 반 누구랑 누가 어디에서 너 얘기하고 있더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든지, “누가 나한테 왜 너 같은 애랑 친하냐고 물어보더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딴 소문 내 알 바 아니라고. 애초에 사실도 아닐뿐더러 설령 소문이 사실이라고 한들 들리는 이야기들만으로 한 사람을 몰아세우는 다수가 잘못된 것이라고. 이제 와서 착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써봤자 그들은 어떻게든 나에게서 본인들이 기대하는 못된 모습을 찾아낼 것이라고.

 그래, 그래서 그랬다. 그래서 나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나’를 방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나’를 스스로와 철저히 분리시켜 방패막이로 쓰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수군대며 비웃는 나는 너희들이 보고 싶은 ‘나쁜 나’ 일뿐이니까 진짜 나는 괜찮아, 이런 식으로.

  하지만 아니, 사실 처음에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그저 비난받는 스스로를 타인의 손아귀 안에 내버려 두는 데 익숙해진 것뿐이었다. 소심하고 쉽게 상처 받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겉으로 보이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오해받는다는 건, 때때로 상대방이 묘사하는 내 모습을 나 자신조차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은 화가 나기보단 오히려 슬픈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것쯤이야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타인의 평가 어린 시선으로부터 스스로를 방관하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법을 배우면서부터였다.

   익숙해질수록 달의 뒷면에 대해 생각하는 나날들이었다.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쪽만을 보여준다.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 수가 없다,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달 뒷면에는, 나의 마음속 가장 그늘진 곳에는 어떤 욕망과 감정과 자아가 살고 있을까. 그 친구에게 이름을 지어주려고 몇 주간 부단히도 애를 써보았지만 도저히 마음에 꼭 드는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단 하나 알아낸 사실은 그곳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정의할 수 없는 -앞으로도 없을- 그것을 나의 일부로서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나로서의 나 자신’에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의 꼬리표는 더 이상 나를 따라다니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스스로를 방관하곤 한다. “누군가는 이런 날 비난하지 않을까,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더 이상 채점 기준이 아니다. 거리낌 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며, 친구들과 길을 걷다 흥이 오르면 길거리 한복판에서 되는대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댄다. 크고 작은 무대에 오르는 걸 좋아하며, 인스타그램 공개 계정에 낯간지럽고 구질구질한 일기를 적는 건 주기적인 일상이다. 가끔씩 속상한 일이 생기면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하고, 더 가끔씩 이건 아니다 싶은 일이 생기면 지위 불문 나이 막론 못된 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로 태클을 걸어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가장 소심하고 여리고 구질구질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모습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읊조릴 테다, 나와 무관한 타인은 날 상처 입힐 수 없다, 나와 무관한 타인은 날 상처 입힐 수 없다.


  한동안은 이렇게 살아볼 요량으로 지내왔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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