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상품 Oct 29. 2019

실패한 사랑과 헤어지며

실패 중의 실패는 사랑의 실패일 것이다

 사랑의 실패는 다른 실패들처럼 '성공으로 가는 도전 중의 하나' 라는 식으로 말하기 어렵다. 사랑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가.


 헤어졌지만 아직도 헤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므로. 진실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왜? 왜 지금 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을까? 헤어진 지 벌써 1달이 넘었다. 그리고 잘 써가던 다른 글을 미뤄둔 채, 왜 나는 나말고 아무도 관심없을 내 실패한 사랑에 대해 쓰려하는가?


 잘 모르겠다. 살다보면 어디로 갈 지 정하고 출발할 때도 있지만, 가면서 어디로 갈 지 결정하기도 하지 않나? 이번엔 후자를 택하겠다. 행동주의자가 되겠다. 마음에게 맡기고 가다보면 답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최대한 솔직하게 써보겠다.



 1  담배

 혼자 조조영화를 보는데 주인공이 담배를 너무 맛있게 폈다. 줄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영화관을 나와 편의점으로 갔다. 말보로 레드를 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피는 거라 걱정이 됐다. 아침부터 거리를 휘청이며 걷고 싶진 않았다. 

 "말보로 골드 주세요." 라고 말하고나서, 진열대 아래 쪽의 보엠 시가 미니가 보였다. 그녀가 폈던 담배다. 나는 말보로 대신 보엠 시가 미니를 달라고 했다.

 연애 초, 그녀에게 왜 그 담배를 피냐고 물었었다.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예쁘잖아.' 


 2  미니멀리즘

 어제. 주말이어서 오랜만에 집 대청소를 했다. 하다보니 청소가 너무 빨리 끝났다. 평소보다 딱히 더 치울 것도 없고 더 정리할 것도 없었다. 대청소할 생각에 잔뜩 힘이 들어갔던 나는 조금 허탈해졌다.

 그녀와 헤어지고나서 나란 사람이 얼마나 가진 것 없고 인간관계가 좁은 사람인지 알게 된다. 연애할 땐 그녀의 것들로 내 마음과 내 방이 가득찬다. 헤어지고나면 내 마음과 내 방은 강제 미니멀리즘이 된다. 그녀의 모습들이 사라진 마음이 원래 이렇게 컸었구나 깨닫고, 그녀의 물건들 치운 방을 보며 이렇게 넓었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요즘 약속이 없는 미니멀한 주말을 보며, 그녀가 내 인간관계의 거의 모든 것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3  가을

 그녀와 햇수로 7년을 만났다. 7년 동안 8번 헤어졌다. 그녀가 나를 7번 찼고, 7번 나를 다시 잡았다. 나는 그녀를 1번 찼고, 1번 다시 그녀를 잡았다. 

 신기한 것은 8번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헤어짐을 말했던 계절이 모두 가을이었다는 것이다. 한, 두 번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일곱 번은 신기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을에 헤어지자고 말했던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차였으니까. 그래서 여름이 지나고 밤공기가 서늘해지면 이별을 예감하곤 했다.

 계절로 표현하자면 그녀는 여름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겨울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가을에 우리가 헤어졌던 것은.

 오늘은 낮에도 덥지 않은 완연한 가을이었다. 잘 참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더이상 따갑지 않은 햇살에 갑자기 마음이 무너졌다. 거리에 국화꽃은 예쁘게 피었더라.




 보엠 시가 미니와 대청소 그리고 국화까지. 그녀를 떠올릴만 했다. 그녀를 떠올릴 만한 일들이 많았다. 


 7번을 헤어지고 다시 만나도 나는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실패한 사랑일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7년의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묻기도 했다. 안 아깝다. 솔직하려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에게 마음껏 나를 낭비하길 잘했다고, 그때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아이가 크면 언젠가 부모의 손 놓고 독립해야 할 때가 오듯이. 그때가 부모에겐 항상 갑작스럽게 느껴지듯이.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뤄질 사랑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듯이.


 왜 지금에서야 이 글을 쓰고 싶었는지 알 것 같다. 이제야 나는 내 안에서 그녀를 자연스럽게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 이 순간. 그러나 마음이 평온한 이 순간. 지금이야 말로, 내 안의 그녀를 잘 보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실패한 사랑이었지만 그래도 사랑이었으니까. 잘 보내줘야지. 그녀가 아닌 나를 위해서.



https://www.instagram.com/mongeum/

이전 15화 오해와 자기 방관의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