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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Mar 19. 2020

집착이 나쁘게만 느껴지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은 사람에게 활기를 가져다준다.
당신도 무언가에게 집착했으면 좋겠다.



하나                                 


아빠! 잘못했어요! 들어가게 해주세요.


 쿵쿵쿵, 나는 아빠를 부르며 연신 문을 두드리고 있다.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쳐져 있지 않다. 콩크리트 바닥은 너무 차갑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것이 너무 차가워 나는 오른발을 왼발 위에, 왼발을 오른발 위에. 그렇게 반복하며 차가움을 참았다. 두 손은 계속해서 아빠를 두드렸다.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잘못했어요. 제발요. 쿵쿵쿵쿵쿵쿵쿵쿵, 쿵.


 꿈이다. 이마에는 땀이 눈물처럼 맺혀있다. 흐르지도 않고, 그렁그렁, 곧 쏟아질 것 같다. 땀을 닦아내고 이불을 걷고 자리에 앉아 한참, 허공을 바라보았다. 언제였을까. 집에서 발가벗겨져서 쫓겨난 기억은 있는데 어떤 잘못을 해서 쫓겨났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빠, 그때 기억나? 나 발가벗겨서 쫓아냈었잖아.


그랬나?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대답, 그랬나?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그저 대수롭지 않게 그 꿈을 잊게 된다. 나에게는 상처였던 것 같은데, 상대방이 대수롭지 않은 가벼운 반응을 하면 나에게 있던 상처는 상처가 아닌 게 된다. 그저 그런 일이 되어 버린다.


상처의 기준은 뭘까? 


 부딪혔는데 멍이 안 들면, 피가 나지 않으면 상처가 아닌 게 되는 걸까? 상처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지만 내 상처가 타인에게 가벼워질 때, 상처는 물 위를 둥둥 표류한다. 아무에게도 구조받지 못한 채 스스로 헤엄쳐 육지에 발을 내딛어야 한다. 육지에 발을 언제 내딛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육지에 발을 내딛어도 혼자이겠지만, 어떻게든 나는 혼자 상처를 이겨내야 한다. 


어차피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거라는 것을 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이상, 사람은 언제나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는 것이다.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면,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사람없이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우리는 이 모순적인 상황 안에서 스스로를 지켜야하는 것이다. 최대한 상처를 덜 받는 쪽으로 지켜내야 한다. 


 상처는 말과 행동으로부터 온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차라리 칼 같은 날카로운 물건으로 낸 상처가 이보다 나을 것 같다는, 치료를 하고 아무 생각없이 지내다보면 어느새 나아있으니까, 하지만 말이나 행동으로 받은 상처는 계속해서 혹은 문득 그 말과 행동이 차올라서 상처를 덧낸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 위에 상처, 상처 아래 상처를 가져온다. 


 사람들과 친해지다 보면 어느새 나를 훌훌 털어낸다. 사람은 어쨌든 서로를 더 많이 알게될 수록 가까워지니까. 그렇게 나를 넘치도록 쏟아내면 탈이 난다.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자만한 상대방은 그 안에서 나의 약점들을 찾아내 화살을 날린다. 상대를 믿고 어떠한 방어책도 준비하지 않고 있던 나는 결국, 그 화살에 10점을 내어주고 만다. 


명중이다.



                                 

 ‘나’라는 존재를 완벽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있을까? 나는 100%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모두가 인생 1회차인데 어떻게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알 수 있단 말인가. 매일 다른 경험을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그러한 사람들이 만나 대화를 한다. 매일이 새로운데 어떻게 내가 나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끔 이상형이 뭐야? 뭐 좋아해? 라는 질문을 들으면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만났던 사람들이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통계를 내서 내 이상형을 추릴 수도 없는데 정확한 이상형을 말하기란 너무 힘들다.


 20살 때 만났던 그 사람의 눈매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고요. 22살쯤 같이 알바했던 그 사람의 콧대랑 입매! 또 23살쯤 만났던 그 사람의 헤어스타일과 키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네요. 물론 이게 정말 내 이상형은 아니다. 


 이렇게 내 이상형은 완성 시키면 되는 걸까. 이런 말을 진짜로 한다고 생각만 해도 웃기다. 나같은 경우는 바라는 이상형이 매일 다르다. 어떤 날은 이런 사람이 좋다가도 어떤 날은 이런 사람이 좋다. 변덕스럽다고 할지 몰라도 현실이 이렇다. 그러므로 나는 이상형이 없다. 그냥 그때 마음이 가는 사람이 좋다. 


 좋아하는 것 또한 매번 다르다. 한번은 고구마에 꽂혀서 1일 1고구마를 먹은 적이 있다. 이때의 나에게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고구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고구마를 제일 좋아해요, 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귀리우유가 좋다. 그냥 우유보다 가볍고, 고소하고 중독성 있는 맛을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영화도 마찬가지다. 인생영화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나는 지금 ‘Call me by your name’ 이요, 너무 좋아해서 10번은 보고 DVD까지 사서 5번은 더 봤어요. 너무 좋아해서 책까지 사서 읽었어요. 하지만 과거에 나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요. 더 과거에 나는 ‘Eternal Sunshine’이요. 라고 말할 것이다. 매일 인생영화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 나는요, 당신이 좋아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다보니 집착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집착이라는 단어는 왠지 부정적으로만 느껴진다. 하지만 난 집착의 긍정적인 부분을 말하고 싶다. 어떤 것에 집착하면 분명 그만큼의 행복이 온다. 한번은 영화에 집착한 적이 있었다. 한편의 영화는 나를 뜨겁게 만들었다. 영화에 대한 비하인드를 찾아보고 배우들의 말을 집중하며 그들의 말에 공감하며 웃었다. 또 비하인드 속 이야기를 다시한번 느끼고 싶어서 영화를 다시 본다. 그렇게 영화에 더 깊숙이 빠져들었고, 나는 결국 원작소설까지 읽는 지경에 이른다.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속 장면과 비교하고, 영화보다 더 생생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전율을 느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영화를 보면 또 영화가 새롭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더 깊이 영화에 빠지게, 집착하게 된다. 그 집착을 나에게 활기를 가져다준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찾아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하루에 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하나를 찾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 좋아서 계속 더 영화에 집착하게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도 미친 거 아니야? 뭐 그렇게까지 해?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당신을 영업을 해서 함께 이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 즐거움은 내 삶에 활기를, 행복을, 웃음을 가져다주니까. 당신도 활기를 가지고 행복을 느끼고 웃으면 좋겠으니까.


 또 하나 나는 노래에 꽂히면 주구장창 그 곡만 듣는다. 반복 재생을 눌러놓고, 음악을 들을 틈이 생기면 그 음악만 듣는다. 음악을 들으면서 가사를 곱씹으며 그 노래를 따라부른다. 그러다 그 노래의 영상들을 찾아본다. 뮤직비디오, 라이브 영상 등등. 그렇게 가수에 빠지게 되면 그 가수가 부른 다른 곡들도 들어본다. 그러다가 더 꽂히는 곡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니면 다시 원점, 처음 꽂힌 그 곡을 계속 듣는다. 며칠을 그렇게 한 곡만 듣는다. 노래가 지겨울 때까지. 나는 보통 곡을 좋아하게 되면 그 곡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듣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계속 그 감정을 반복 재생한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은 사람에게 활기를 가져다준다. 당신도 무언가에게 집착했으면 좋겠다. 집착하고 매달리면 좋겠다. 쉽게 질려버려도 상관없다. 나도 언제나 쉽게 질려버리며 변덕 부리니까. 변덕 부리고 쉽게 질리면 어떤가. 그런 사람은 가벼운 사람인걸까? 그런 사람은 진중하지 못한 성격인 걸까?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걸까? 그런 사람은 그냥 그런 사람이다.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없다. 그러니 집착하면 좋겠다. 그래서 웃었으면 좋겠다. 하루에 한번 웃는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니까. 아, 물론 집착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랑에 집착하게 되는 순간 당신은 꽤 괴로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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