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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Sep 15. 2020

정적의 반찬화

한 가족이 가지고 있던 송곳에 대하여

 순식간에 입 안에 털어 넣은 자두 한 상자를 그대로 게워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라 누나에게 하나라도 뺏기면 극도로 억울할 거 같았거든요. 아마 하나라도 누나가 먹었다면, 누나가 몰래 혼자 먹으려고 숨겨둔 스위스제 초콜릿을 한 입에 털어 넣었을 겁니다. 누나가 그러던대 맛있는 자두는 핑크레드 색이라고 하더군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웬일로 빨간 사과를 보여주며 색의 차이점을 명확히 보여줬습니다. 솔직히 소름끼쳤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는데, 이걸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하하 거렸었습니다.


 제가 다 먹어댄 자두가 그날 누나가 알려준 핑크레드 색이었습니다. 그 자두는 4살짜리 아이의 주먹만 해서 딱 한입에 먹기 좋았습니다. 말랑말랑해서 입안에 하나를 넣고 다른 하나를 더 넣어도 무리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한 올까지 쪽쪽 발라먹어야 깔끔한 뇌 모양 씨를 뱉어낼 수 있는데 입 속에서 뽁하고 나오면 괜히 설레었습니다. 아직 한 가득 남은 자두를 다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었나봅니다. 뇌 모양 씨를 혹시 화분에 심으면 자두 나무가 자라서 자두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동심에 사로잡힐 정도로 자두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런 자두 한 상자를 다 먹은지 5분 만에 게워내야 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자두 한 상자를 다 먹어댔을까요. 어떤 마음으로 엄마는 이 자두를 제게 주었을까요. 엄마는 웃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환하게 웃는 엄마를 자주 볼 수 없었는데 근래에 엄마의 날씨는 꽤 화창했습니다. 제가 모의고사를 망쳐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도 엄마는 등을 토닥여주며 괜찮다고 웃었습니다. 그 웃음의 의미도 모르고 저는 어린 애처럼 따라 웃었습니다.


 3개월 전만 해도 엄마는 어떤 것에도 딱히 큰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엄마가 아끼던 바지에 김치를 떨어뜨렸는데 엄마는 어떤 말도 없었습니다. 그저 떨어진 김치를 싱크대에 버리고 바지를 벗어 손으로 빨 뿐이었습니다. 어렴풋 하게 제가 더 어릴 적 이런 행동을 밥먹듯이 했어도 엄마는 매번 따뜻하게 안아주며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책을 읽다가 두 장을 넘겨 읽는 실수처럼 다시 돌아가면 그 뿐이니 괜찮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엄마는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습니다. 꼭 감정을 잃은 사람 같았습니다. 심지어 전날 산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을 때 조차 화내지 않았습니다. 그런 엄마가 참 자주 웃습니다. 커피를 마시다 혀가 데여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야근을 하고 돌아와도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멍청한 저는 엄마가 웃는게 좋았습니다. 마마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엄마를 좋아하는 건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별볼일 없는 성적과 딱히 튀지 않는 평범함으로는 엄마의 미소를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누나는 그림이라도 잘 그려서 수재 소리를 들어가며 학교를 다니는데, 저는 내밀 것이 조촐한 싹싹함과 자상함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승부수를 둘 수 밖에 없었죠. 저 같은 아들 없다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어 무뚝뚝한 누나의 자리까지 탐을 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누나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영 소질이 없었습니다. 아마 아빠를 닮아 그 모양인가 봅니다.


 하지만 미소를 잃은 엄마를 웃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대치의 자상함으로 무장해도 엄마는 옅은 미소 한번을 쉽게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노력하면 할 수록 포기하게 되는 것은 제 쪽이었습니다. 사춘기를 딱히 겪지 않았다곤 하나, 무뚝뚝해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정적의 반찬화는 사뭇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튀어나온 송곳은 누나가 아니라 나였구나'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밥상에는 엄마의 미소가 흘렀습니다. 분명 어색했으나 아무도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미소의 출처가 불확실했지만 멍청한 저는 그저 잘 된 일이겠거니 했습니다. 가끔 콧노래를 부르며 양손 가득 뭔가를 사올때면 엄마는 제 생각이 나서 샀다며 저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기분이 좋아질 수록 누나는 집에 오지 않는 날이 잦아들었고 결국 자취를 하겠다며 원룸을 구해 나가버렸습니다. 무뚝뚝하긴 해도 집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던 누나가 급작스럽게 집을 떠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한 것도 제 불찰이겠습니다.


"송곳은 네가 아니야."


 누나는 마치 제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 이 한마디를 남기고 자신의 자취방으로 가버렸습니다. 꼭 뭔가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것처럼 어쩐지 다급해 보였지만 딱히 궁금해하진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게 멍청한 저의 가장 큰 실수겠죠. 그 후로 누나는 가끔 집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슬쩍 가지고 다시 나가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거의 집이 비었을 때 오곤 했는데 간혹 제가 집에 있을 때면 도둑처럼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습니다. 그럴때면 엄마에겐 집에 왔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누나의 입에서 담배 냄새가 났습니다. 혹시나 엄마가 듣고 대노할까봐 말을 하진 않았지만 몸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누나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약간의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의문을 푸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참 자두를 먹고 있을때 엄마는 충전해달라며 제게 폰을 주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남은 자두를 입에 물고 폰을 충전하러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느닷없이 화면이 켜지더군요.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순간 화면에는 낯선 이름의 누군가에게 온 메세지가 보였습니다.


 절대 아빠도, 누나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저도 아니었고 친척 그 누구도 아니었습니다. 폰을 열어 메세지를 확인 한다면 아마 기록이 남았을 겁니다. 아니, 사실은 잠금을 풀고 읽을 수 없었습니다. 확인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누나는 알았을까요. 누나도 알고 있었을까요. 이 자두가 누구에게서 엄마로 온 것인지 말입니다. 마지막 자두씨가 입 안에서 떨어졌을 때 엄마가 왜 웃기 시작했는지, 누나가 왜 나갔는지, 왜 흡연을 했는지 알겠더군요. 예상이 아닌 확신이었습니다. 오른쪽 발가락 앞에 떨어진 그 자두씨가 얼마나 더러워 보이던지, 구역질이 났습니다. 구정물을 삼킨 것처럼 목구멍에서 숨을 쉴 때마다 썩은 내가 진동했습니다.


모든 자두를 게워내자 송곳이 제게 날라와 박혔습니다.

그제야 보이더군요. 누나의 방문 틈을 새어 나와 흐르는 피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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