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아닐 편지
아마 이건, 조금 긴 편지가 될 듯합니다.
너무 늦게 보내게 되어, 미안합니다.
그 어떤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던 장례식장.
아무 일 없다는 듯 서로 안부나 묻던 손님들.
사실 저 또한 당신과의 추억이 많지 않아, 그 분위기가 어색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담담하게 국화꽃을 받아들었고,
혹여나 이런 마음을 당신에게 들킬까, 두려웠습니다.
이미 다 보셨으리라고 생각하지만요.
저는 이날, 당신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아, 뒤에 가만히 앉아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제가 들었던 당신은, 참 멋진 여인이었습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계셨다지요.
당신이 라디오에 나와 상을 휩쓸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저에게 들려집니다.
당신의 노래나 한번 들어볼걸. 이제야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당신의 딸은, 늘 제게 즐거웠던 기억들을 말했습니다.
당신과 했던 이야기,
당신과 먹었던 밥,
당신의 아름다웠던 모습까지도.
당신과 꼭 닮은 그녀는, 지금도 당신과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즐거워 보입니다.
그 모습을 보는 전, 이상하게도 슬프기만 합니다.
마치 영화 속의 페이드아웃 장면처럼,
그것은 제 모습이 될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염치없게도 당신께 부탁을 하나 하고자 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하나밖에 없는 손녀의 부탁일 테니,
부디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아름답게 피워낸 꽃은, 이제 많이 빛바랜 모습이 보입니다.
나라는 겨울을 만나, 잎이 떨어지고 줄기가 시들었습니다.
당신이 떠난 지금, 그녀는 더욱 시린 겨울을 맞이했지요.
그러니 그녀가 당신을 그리워할 때면,
봄에는 아름다운 벚꽃을 흩날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휘날려,
가을에는 붉디붉은 낙엽을 떨어트려,
겨울에는 사랑스러운 하얀 눈을 내려,
하물며 그녀가 좋아하는 그 작은 어떤 것이든지,
조금이라도 그녀가 이 생을 더 좋아하게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너무 빨리도, 너무 늦게도 아닌,
떠나야 할 때 나를 떠날 수 있도록.
부디 오래,
더 오래.
이 땅에 붙잡아주길 바랍니다.
애석하게도 저와 당신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신의 밥.
장조림을 좋아한다는 제 말 한마디에,
늘 당신의 밥상엔 장조림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당신과의 추억 하나 떠올리기 힘든데,
당신은 마지막까지 저의 말 한마디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생각 없던 이 기억까지도, 지금은 너무도 죄스럽게 느껴집니다.
다음 생엔 부디, 다시 저의 어머니의 부모님으로 태어나되,
저의 할머니로 태어나시지 말길 바랍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마지막까지 저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눈물 흘리지 못하였습니다.
나무가 가고 남은 꽃이 불쌍해서,
그 꽃의 눈물이 너무 서글퍼서,
그저 눈물 흘렸습니다.
다시 한번 당신과 만날 수 있다면,
하고픈 말, 묻고 싶은 말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저의 욕심이겠지요.
못다 남은 아쉬움이 있다면,
그것은 여기 남겨두고서, 편히 가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당신이 어떤 모습을 하였었는지,
모두 우리의 기억 속 현재에 남아있습니다.
당신의 딸은, 당신과 만나 행복했다고 하였습니다.
또 저는, 그러한 당신의 딸을 만나 더없이 행복합니다.
이 행복은, 앞으로의 딸들에게 순환되겠죠.
그립습니다.
당신이 그리워질 때면,
저기 저 구름에 띄워
또다시 편지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나의 할머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