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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Oct 20. 2020

당신이 부르는 이름에 - 2

 몇 년이 지나도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지나온 순간을 돌이켜보면, 나는 알고 싶은 것과 알고 싶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권이 없었다. 하필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처음엔 많이 억울했다. 왜 나는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것일까. 이렇다 할 물욕도, 수집에 대한 욕심도 없는 내가 견고하게 지켜오던 적당함을 잃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평범함’ 안에 들지 못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마치 본능처럼 ‘나 하나도 버겁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된 이유. 불안감은 그 실체를 확인하지 않아도, 단지 풍기는 냄새만으로 사람을 옥죌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깨달았을 때, 나는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평범, 보통, 정상.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가장 모순된 단어라는 것을.



 도어락 앞에 서서 나는 가만히 문을 쳐다봤다. 503호. 숫한 노력으로 지켜낸 저 숫자. 누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숫자를 대라고 한다면, 나는 503이라고 답할 것이다. 동시에 가장 싫어하는 숫자도 503이라고 답하겠다. 지겹고도 지겨운 저 숫자가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도어락을 열고 비밀번호를 하나하나 누르는데 차마 마지막 숫자를 누르지 못하고 연신 도어락을 닫고 열기를 반복했다. 머릿속에서 굳이 꺼내지 않아도 손가락이 기억하는 비밀번호를 마치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런다고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님에도 나는 기어코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늦추고 싶었다.      

 비밀번호 까먹었니?     

 문을 열고 나온 건 엄마였다. 꽤 오랜만에 보는 엄마는 어딘가 모르게 초췌하면서도 한편으론 즐거움을 묻히고 있었다. 짧게 자른 머리 때문일까, 오늘따라 유독 밝은 색의 카디건 때문일까. 엄마의 입 꼬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꼭 웃음을 꾸역꾸역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일 끝내고 가장 빠른 기차 타고 온 거야.

 도환이도 곧, 올 거야.


 내 어깨를 어루만지는 엄마의 손에서 이상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것이 내 어깨에서 스멀스멀 꼭 기어 다니는 것 같아 괜히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어쩌면 부엌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나를 자극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디 있어.     

 알면서도 나는 물어야 했다. 그렇게라도 나는 저 사람과의 거리가 있음을 표현해야 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린 적 없고, 신경 쓰지 않고 있으며 반갑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야 했다.


 해완아.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 그 목소리로 불리는 내 이름이었다. 내 이름이 이토록 듣기 싫었던 것도 오랜만이다.


 어릴 땐 내게 한 없이 크고 듬직했던 당신이 지금은 고작이 내 이름 하나도 눈치 보며 부르는 처지라니.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런 꼴로 나타났다니. 아직 이 집의 대출을 갚고 있는 내게 어떤 염치가 남았기에 그런 얼굴을 들이미는 것인지. 한심했다.

 한 걸음 다가올 때 마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또 한 걸음 다가오자 나는 거실의 가장 끝에 섰다. 엄마는 안절부절못하며 내게 다가왔다. 엄마는 무슨 마음일까. 먹지도 자지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던 그때의 엄마가 떠올라 나는 또 한 발 물러섰다. 더는 물러설 곳도 없었다. 배신과 분노로 점철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매일 술을 끼고 살던 엄마를 대신해 모든 걸 알아봐야 했던 내게, 엄마는 다시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죽으려고 했대, 한강에서…


 기가 차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으려고 했다 라. 엄마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뒤로 물러나는 그를 보며 나는 그동안의, 그리고 앞으로의 감정을 명료하게 정리할 순 없겠지만 지금의 감정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원망. 감정에 확신이 드는 순간, 더는 그 집에 있을 수 없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눈물과 원망 섞인 함성으로 나를 망치겠다는 생각에 가슴 아래쪽이 바늘로 찔린 듯 쑤셔왔다. 만성 위염에 두통과는 사뭇 다른 고통이었다. 참는다고 참아지는 통증이 질렸을 즈음 찾아온 이 고통은 새로운 짜릿함이었다.


 구역감이 밀려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고 밖으로 나가 무작정 뛰었다. 분명 엄마가 뒤쫓아 오는 것을 느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잡히면 오늘 나는 누군갈 또 죽일 테니까. 집을 뛰쳐나오면서도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간 사치라고 외면했던 감정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내 목을 조여 왔다. 묻어둔 질문들 의문들, 그 모든 게 폭발하듯 나는 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되면서 가장 먼저 받은 선물은 나를 사회로 있는 힘껏 밀어 넣었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코가 깨져도 돌아갈 수 없게 했다. 청소년과 성인 사이의 과도기 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나는 그렇게 살았다. 노력과 결실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낭만적이게 느껴질 만큼. 현실을 사는 데 필요한 건 낭만이 아니었으니까.

 그가 우리를 상대로 잠적한 날은 내가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은 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림이 너무도 좋았다. 그래서 무작정 화가를 꿈꿨고 미대에 진학 했다. 지역, 대학 이름 그런 것보단 내가 안정적으로 합격할 수 있는 대학에 지원했고 그날은 마지막으로 기다리는 내 1순위 대학의 합격 발표일 이었다.


 오후 2시가 넘도록 대학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나는 떨어졌구나 싶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그날따라 엄마의 전화를 통 받고 싶지 않았다. 분명 대학에서 연락이 왔는지, 왔다면 합격인지 그런 것들을 물어보는 전화일 테니까. 나는 고의적으로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엄마는 전화를 다시 걸어왔다.

 엄마는 울먹이고 있었다. 그의 전화는 꺼져있다며 엄마는 횡설수설해 했고, 자신이 딸인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판단하지 못했다.


 그게 그렇게 울먹일 일이야?


 처음엔 대수롭지 않았던 것 같다. 평소에도 자주 전화를 꺼두고 잠적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나는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이런 불성실한 태도는 벌써 5년째 지속되고 있었고, 나와 엄만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동생은 육상 선수를 준비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있어 딱히 그가 어땠는지 잘 몰랐을 것이다. 한편으론 엄마가 악착같이 동생에겐 숨기려 애를 쓰긴 했다. 워낙 정이 많은 애이기도 하고, 한 번 가출한 전적이 있어서 그땐 나도 쉬쉬해왔다. 그렇게 일상 같은 일임에도 엄마가 울먹이는 이유가 꼭 따로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 집, 경매에 넘어가면 어떡하지?


 엄마는 울먹이며 그제야 문제를 수면 위로 띄웠다. 집. 이 집을 지키지 못하고 거리로 나앉는 것. 그 자체를 생각해 본 적 없는 나에게 엄마의 전화는 다른 의미로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불안과 짐을 언제나 떠안고 사는 세상, 그 어디서도 안정감을 얻을 수 없는 세상. 나는 그런 세상에 있는 힘껏 떠밀렸다. 나는 여전히 3년 전 빨간 딱지가 붙은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젠 대출과 경매가 나를 이 집에 묶어버렸다. 

 엄마와의 전화를 끊자 휴대폰에는 대학 합격 문자가 와있었다. 합격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나를 잔인하게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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