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상품 Oct 30. 2020

당신이 부르는 이름에 - 3

-누나!!

   

 도환이가 무작정 뛰고 있던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관성으로 비틀거리며 동생의 앞에 섰다. 뛰는 내내 흘린 눈물이 여전히 마르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동생 앞에서 나는 체면을 구긴 것이 민망했다. 나는 허겁지겁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뒤돌아섰다.


-미안한데, 나 급한 일 있어서 먼저 갈게.

 누나 그래도 이렇게 가는 건 쫌…

 아니, 이게 맞아. 그리고 너도 가. 관심 갖지 말고 한동안 오지 마.


 꽤 거친 동생의 손을 뿌리치고, 나는 다시 무작정 뛰었다. 꼭 행선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앞으로만 가지 않고 괜히 중간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환이는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뛰던 것을 멈추고 다시 돌아서 도환이가 나를 붙잡았던 곳을 바라보았다. 도환이는 여전히 그곳에 서있었다. 그런 눈빛으로 나를 잡은 동생에게 관심 갖지 말라고 뱉은 모진 말이 입가에 맴돌아 쉽게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나는 기어코 담배를 꺼내 연신 피웠다. 도환이 집 쪽으로 몸을 돌려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이 짓을 멈출 수 있었다.


*     

  그의 연락이 끊긴 후 며칠이 지나자 나는 엄마와 그가 가볼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그가 즐겨갔다던 낚시터부터 자주 방문하는 술집까지 주말 내내 돌아다녔다. 나도 엄마도 차 안에서 그 어떤 말도 주고받을 수 없었다. 나는 할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차마 입을 쉽게 뗄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순간보다도 과묵해야 했다. 


-제수씨, 그 새끼 아마 공주일거요. 주소 보낼 테니 거기로 함 가보쇼.


 한참을 헤매던 때 그와 돈독하게 지내던 최 과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전에는 서로의 집을 오갈 정도로 돈독하게 지냈지만 근래 뜸하던 찰나였다. 작은 키에 장난기가 많던 최 과장에 대한 인상은 좋은 편이었다. 우리 집에만 들르면 언제나 나와 도환이에게 용돈을 쥐어주곤 했는데, 그것이 꽤나 쏠쏠했다. 엄마도 최 과장의 넉살에 그가 미혼이었다면 동생을 소개시켜 주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묵직한 면은 덜했지만 진솔했고, 장난기가 많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최 과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엄마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곧장 공주로 향했다. 


-알 곤 있었는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어요. 나도 그 새끼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제수씨.     

 엄마는 부르르 떨며 하고 싶은 말을 삼켜내는 것 같았다. 최 과장에게 몇 마디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었다. 나는 최 과장의 전화를 받을 때부터 이 상황의 전말을 조금씩 깨달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지

금보단 어렸던 내가 가장 억울한 것은 합격에 대한 축하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일단 들어와라… 어쩔 수 없지 않니…


 무작정 들어온 찜질방에서 꺼진 휴대폰을 충전하자 엄마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인 것일까. 엄마를 그렇게 비참하고 무기력하게 만든 장본인이 거지꼴을 하고 나타난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인가. 무기력한 엄마를 들춰 매고, 사태를 파악해버린 동생의 사춘기를 견뎌야 했던 내게 어쩔 수 없다 라. 


 가끔 엄마에게 기대려 해도 돌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냐 는 세상 무력한 답변뿐이라는 것이 오늘따라 더 허무하게 느껴진다. 도환이의 방황도 그리 길지 않았고, 엄마도 어느 순간 빈자리를 채워갔지만 나는 여전히 503호 앞에 서있었다. 어떤 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나 스스로를 들들 볶으며 버텨야 했다. 그 짐이 언제나 내 몫이라는 부담감과 의무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디 하나 기댈 곳 없이 말이다.


 도환이가 운동을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펑펑 울며 술을 마셨다. 하지만 도환이를 따라 나까지 그만두고 싶진 않아 더 악착같이 알바를 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술기운이겠지만 종종 나를 징그러워했다. 애써 담담하게 공부하는 도환이에게 나는 엄마에게서 받은 억울함을 쏟아냈다. 우리는 매일 서로를 갈기갈기 찢어놔야 직성이 풀릴 만큼 망가져갔다.


-나 재능 없어. 코치님이 운동 관두라고 했었어. 그동안은 내가 괜히 오기 부렸던 거야. 나 체육 강사, 그런 거 할 거야.


 그동안 아무 말 없이 내가 쏘아대는 말들을 삼키던 동생은 어느 날 흘리듯 말했다. 꼭 혼자만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꼬집듯 담담한 도환이의 말에서 나는 없던 뼈를 자라게 했다. 그 뼈가 나를 깊숙이 찌르게 내버려 뒀다. 그 상처로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덮이지 않을까 하여 나는 피가 철철 흐르게 앞뒤 재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저건 저거대로 쉽게 낫지 않았다. 

 그런 것이 익숙해져 갈 쯤 엄마도 나도 도환이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      

 최 과장이 알려준 곳은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여기서 고함을 지르면 마을주민 모두가 나올 만큼 작고 작았다. 그가 있다는 집은 마을 안에서도 가장 작고 허름한 집이었다. 외부인의 방문이 익숙하지 않은 듯,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무너질 것 같은 그 집의 대문을 주먹으로 쾅쾅 치자 안에서 어떤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숏컷에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나온 그 여자는 어딘가 모르게 초조해 보였다. 껌을 씹으며 초조한 자신을 숨겨보려 대뜸 소리부터 치는 그 여자에게 엄마는 욕 한번 하지 않았다.      

 유광진 여기 있죠?      

 엄마의 목소리엔 미세한 떨림조차 없었다.     

 어휴, 저걸 이제 안거야?     

 마을 주민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안타까움의 탈을 쓴 채, 엄마를 모질게 탓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유광진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올 것이 무언가 직감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남편, 여기 있냐고.     

 입술을 깨물며 엄마의 입에서 남편이라는 단어가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복잡하게 뒤엉켰다. 그때 집 뒤편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그였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연신 ‘유광진 이 개새끼야’ 만을 외쳤다. 내가 뛰쳐나가는 그를 따라갔으나 끝내 차에 올라타 사라지는 그를 잡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유유히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이 뿌연 안개처럼 두 눈을 흐릿하게 가리었다.      

 여자는 울었고 엄마는 꽤 담담해 보였지만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쓰러져가는 집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차에 타서야 참았던 모든 것들을 흘렸다. 나는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연신 두 눈을 비볐다.     


 *


 엄마의 문자를 읽고 나는 다시 휴대폰 전원을 끄고 잠을 청했다. 혼자 있고 싶은 사춘기 아이처럼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고 몸을 웅크린 채 몇 시간을 누워만 있었다. 뒤늦은 사춘기에 몸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나는 지금까지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짐을 왜 짊어져야 하는 지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무겁고 버거운 짐, 그가 남긴 빚 앞에서 집을 책임지겠다는 의연한 다짐, 간혹 지치고 힘에 부쳐도 다시 일어나는 꿋꿋함. 그 속에 왜는 없었다. 왜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왜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이 짐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너무도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부서질까 애써 왜라는 항목을 찢어냈다. 

 이제 와서야 나는 내가 외면한 것이 나라는 걸 알아버렸다.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매일 도환이에게 미안했고, 엄마의 주정을 일과로 받아들였다. 죄책감에 발톱부터 머리털까지 먹혀들어가는 것을 방치하고 합당한 벌로 간주했다. 슬픔과 좌절은 묻어두고 가족과 집만을 향해 달리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자기 학대인지도 모르고 나는 무수한 채찍질을 자행했다. 못 다한 죄책감은 내 밤과 낮을 점령하고 수 십 번 목줄을 조여 맸다. 남들에겐 차마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꽁꽁 싸매어 삭히고 삭혀댔다. 


 눈을 떴을 땐 새벽 3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목욕탕 청소 직전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무거운 몸을 끌고 탕에 들어갔다. 몸이 확 풀리는 정도의 온도는 아니었지만 그 작은 탕 안에 나 홀로 있는 것이 오랜만의 호강처럼 몸을 녹이었다. 이 탕에서 손목을 긋는다면 살이 잘린 고통도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붉은 피가 스멀스멀 흘러나와 점점 탕을 붉게 물들이면 나는 그 향에 취에 잠에 빠져 들 것이다. 이 작은 탕 바닥의 타일이 보이지 않을 만큼 탕이 진하게 물들면 그때야 말로 이 탕에 모든 것을 내어주지 않을까. 상상에 취한 것인지 탕은 점점 검붉게 물들어 갔다. 연신 양 손목을 만졌지만 멀쩡하게 붙어있는 손목에서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해완아.


 밖을 나서자마자 그의 목소리가 스치는 바람에 섞여 불어왔다. 그때 돌아봐 줬더라면, 차에 타기 전 나를 돌아봐 줬더라면, 그가 부르는 내 이름이 이리도 끔찍하게 돌아오진 않았을 텐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원망 한번 쉽게 못하고 가슴에 묻는 나를 바보취급하진 않았을 텐데. 수많은 후회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았을 텐데. 남은 담배를 태우며 정처 없이 걸었다. 담배 연기를 타고 나오는 후회는 다시 담배를 타고 내 목구멍으로 들어갔다.

  

 해완아.


 걷고 또 걸어 나는 서울역에 도착했다. 크고 웅장한 역이 조금씩 하루를 준비하고 첫 차를 타는 사람들이 서울역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타는 곳 5번에서 노란선의 처음부터 끝까지 밟아가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하지만 규칙적인 노란 선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나는 중심을 잡는 척 휘청거리기도 하고 외줄을 타는 것처럼 주춤거리며 들썩였다. 거의 끝에 다다랐을 즈음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엄마에서, 동생에게서 온 문자와 부재중 통화 그리고 한 개의 음성 메시지가 순서대로 진동을 울려댔다. 나는 멈춰서 음성 메시지를 눌렀다.


-해완아… 미안하다… 널 볼 면목이 없어…


 메시지를 끝까지 들을 이유는 없었다. 다시 휴대폰 전원을 끄고 USIM칩을 꺼내 발로 밝아 쓰레기통에 버린 뒤 휴대폰을 철로로 던졌다. 노란 선 위에 내 발은 여전히 묶여있지만 그 끝에 다다르자 이유 모를 해방감이 밀려왔다. 나는 무심결에 걸터앉아 휘파람을 불었다.


 저 멀리서 열차 한 대가 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부르는 이름에 -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