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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쏘쓰 Jul 30. 2019

5. 미안한데, 너는 힘들겠는데?

2016년 8월, 비자가 나왔다.

결혼비자로 아주 든든하게 1년짜리.

회사가 비자 서포트를 해줄 필요도 없겠다, 하다못해 알바라도 할 수 있겠단 생각에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넋 놓고 놀고 있던 건 아니다.

계획이 없으면 계획을 만들어서라도 계획대로 살아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기에,


계속 노르웨이어 공부를 하고, 이력서도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지원하기도 했다.

노르웨이에 와서 지원했던 이력서들. 한국과 홍콩에서 보냈던 CV보다 더 많다.

온갖 타입별로 이력서를 만드는 데 도가 텄다.

스타트업 회사 스타일, 중견기업 스타일, 보수적 회사 스타일 등등...


이름보고,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가늠 못할 것 같아 그러면 안된다지만, 내 사진도 막 박아 넣은 CV를 만들고 지원했다.


그렇다고, 좋은 소식이 들려온 건 아니었다.


8월 비자가 나오고, 소셜 넘버까지 모두 나오자 나는 동네에 있는 리쿠르팅 회사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한 번만 만나서 내 CV 좀 리뷰해달라고.


노르웨이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참 내성적인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뭔가 선뜻 내줄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내가 하는 부탁도 완곡하게 잘 거절했다.


우리 포털에 등록은 해놨니?
네 CV가 등록되었다면, 우리 포털에 구직 공고가 올라오는 걸 보고
꾸준히 지원해봐.


원론적인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때로 이런 완곡한 거절들은 나로 하여금 오기가 들게 했다.


CV를 여러 장 인쇄해서 리쿠르팅 회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마침 시간이 되는 컨설턴트들이라도 얻어걸리길 기다리면서.


이런 시도로 몇 명의 컨설턴트를 만났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 식상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네 이력서 너무 좋다. 너무 맘에 들어. 만약 내가 HR이라면 널 뽑을 거야, 하지만 알다시피 지금 경기가 안 좋고 너에게 딱히 맞는 구인공고가 없다... 조금만 시간을 더 갖고 기다려봐.


매일매일 만나는 컨설턴트는 다 다른데, 어쩜 이렇게 멘트는 한결 같이 똑같던지.

나중엔 내가 혹시 어디에 속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마지막에 만난 컨설턴트는, 내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내 마음속 은인 같은 존재다.


그 날은 비가 엄청 내렸고, 나는 그 컨설턴트의 일정으로 세 번이나 미팅 일정을 바꿔가면서 만났다.

그는 그런 내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 회사는 IT 인력을 주로 소싱하는 리쿠르팅 회사였기에, 사실 그가 내게 오퍼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그건 나도 알고, 그도 알았다.


그래서 앉자마자, 나도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인간적으로 내 CV 쓰는 방법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사소한 팁이라도 좋으니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말해줄래?


그는 내 절박함을 읽었다.

세 번이나 미팅 일정을 바꾸고 미뤄왔는데도, 꿎꿎하게 여러 버전의 CV를 들고 비 오는 길을 버스 타고 왔다는 이 동양 여자한테 어쩌면 동정심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고는 그는 내 취업 전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팁을 주었다.


다른 회사도 가봤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어.


지금 노르웨이에서 취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두 부류라고 했다.


1. 노르웨이 사람 : 노르웨이에서 나고 자라서 노르웨이에서 교육받고, 노르웨이에서 일해온 사람

2. 저학력에 육체노동이 가능한 동유럽인


그러면서 그의 관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1. 노르웨이어를 노르웨이인 만큼 할 것

2. 노르웨이 대학에서 다시 교육을 받을 것 (엔지니어 관련이면 더 좋다)

3. 노르웨이인인 남편 성(姓)으로 성을 바꿀 것


이 세 가지가 기본 조건으로 갖춰져야만 남들과 동일 선상에 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이 컨설턴트는 나 같이 절박함을 갖고 오는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일거리 같은 것에도 관심이 있다면 가끔 나오는 알바 자리 정도는 주선해줄 수 있다고 했고, 나는 고맙다고, 알바 자리도 감사하다고 하며 미팅을 마쳤다.



집에 돌아오는 길


허탈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노르웨이어를 노르웨인만큼 할 자신도 없었고, 노르웨이 대학에서 공부라니. 취업을 위한 대학 공부는 더 싫었다. 거기다 취업을 위해 성(姓)을 바꾸라니? 내가 지금 노르웨이에서 취업 한 번 해보겠다고, 먼 계획이던 결혼도 앞당겨했는데, 성까지 바꿔야 한다니,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 날 결심했다.


1. 나는 노르웨이어를 공부할 것이다, 지금 보다 더. (하지만 노르웨이어를 노르웨이인 만큼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이걸로 취업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안다.)

2. 취업을 위해서 하는 대학 공부는 절. 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노르웨이에서.

3. 취업을 위해서 내 성(姓)을 가는 일 따윈 더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취업하고 만다.  


그리고 2019년인 지금,


나는


1. 노르웨이어를 한다. 물론 노르웨이인 만큼은 절대 못 한다.

2. 노르웨이에서 학위가 없다.

3. 나는 여전히 내 성(姓)을 쓴다.

4. 그리고 나는 취업을 했고, 내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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