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쏘쓰 Jul 22. 2019

4. 갑자기 분위기 결혼?

내 속도 모르고 시간은 빨리도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노르웨이는 12월에 접어들면 모두가 '미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모두 '미쳐있다'.

그러다 보니, 구인공고는 당연히 안 올라오고, 심지어 노르웨이어 학원도 수업이 없었다.


불안 초조는 극에 달했고, 인생에 백수인 적이 없던 나는 남아도는 시간에 어쩔 줄 몰라하며 늘지 않는 노르웨이어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내 비자는 당시, Jobseeker 비자로, 6개월의 체류기간을 부여받았는데, 그 이후 노르웨이에서 어떻게 체류해야 할지 미리부터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내 계획은 처음부터 하나도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 내 계획을 다시 상기시켜보자면,


1. 6개월 Jobseeker 비자로 노르웨이에 입국 후, 인터뷰를 보고 취업을 결정한다.

2. 취업이 결정되면 취업 비자로 노르웨이에 체류하며 결혼 준비를 한다.

3. 노르웨이 은행에 어느 정도 크레디트가 쌓이면 공동 명의로 집을 마련한다.

4. 한국과 노르웨이에서 결혼식을 하고 결혼비자로 전환한다.


였는데, 전혀.... 1번부터 가망이 보이질 않았다.

1번이 안되니, 2번이 안되고 3번 4번은 당연히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남자 친구에게는 대상을 잃은 화풀이가 계속되었다. 남자 친구는 욕받이 무녀라도 된 듯이 그 화풀이를 감내해주었다.


그러고도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 2016년 새해가 밝았다.


1월도 마찬가지였다.

연말은 연말이라고 다들 놀더니, 새해는 새해라고 다들 풀어져 수업도 없고, 구인공고도 없고, 있는 공고에 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학교라도 다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시 접었다.


나는 초중고 12년, 대학생활 4년으로 내 인생의 모든 공부는 이제 더 이상 끝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은 것처럼, 힘들고 고돼도 내 일을 하는 게 낫지 단 한 번도 공부를 탈출구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무엇보다 하고 싶은 공부도 없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시기가 돌아왔는데도 취업이 안되면 나는 그냥 홍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웃으며 헤어진 홍콩이었는데, 그때만큼은 홍콩이 눈물 나게 그리웠다.

오히려 홍콩 구직 사이트를 보며, '아 그래도, 저긴 내 자리가 있네'라는 생각들을 하며 안위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워하고 답답해하는 나를 위해 남자 친구가 짧은 폴란드 여행을 제안했고, 머리도 식힐 겸, 오자마자 정 떨어져 버린 노르웨이에서도 잠깐 벗어날 겸, 나는 덥석 가겠다 승낙했다.




그리고, 갑자기 청혼을 받았다.

뭐 이렇게 갑자기 청혼을.... 개구리로 한담...

나만큼 남자 친구도 불안하고 초조했을 것이다.

비자를 위해서 하는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나였기에, 청혼하는 순간 무척 긴장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알아온 우리지만, 내 성격을 알았기에 긴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쪽팔리게도 그 순간 '아 적어도 비자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억울했다.

비자 때문에 결혼이라니.

하지만 어차피 하려고 했던 결혼, 일단 하고 안정적인 비자로 다시 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 잡았다.


그렇게 2016년 2월,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백수로), 노르웨이에서 결혼을 했다.


그 해 5월, 비자 타입을 '결혼 비자'로 전환하고, 비자를 신청했고,

그 해 8월, 결혼 비자가 승인되면서 새로운 취업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3. 버텨내는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