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푸우가 되고 싶은 교사

by 청블리쌤


고3 담임을 일부러 안 하시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고3 담임을 하고 학생들을 졸업시켜서 떠나보내는 것은 물이 없어 갈라진 논바닥 같은 심정이고 그런 느낌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 말을 고3 담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Beautiful Girls(1996)라는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실은 아주 이상한 대목에서였습니다. 조숙한 13살 소녀(Natalie Portman 分)와 29살의 남자(Matt Dilon 分)의 사랑을 그린 장면이죠. 소녀가 남자에게 자기를 5년만 기다려주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할 수도 있다는 노골적인 얘기를 하니까 역시 동일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남자가 소녀의 현재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얘기를 합니다. 자신은 Winnie the Pooh 같고, 소녀는 함께 놀던 소년 Robin이라는 겁니다. 어렸을 때는 같이 놀다가 점점 나이가 들어 변해 가면서 생각이 변하고 관심사가 변해서 더 이상 푸우와 놀지 않는다는 거죠. 자신은 변하지 않지만 소녀만 변한다는 거예요. 지금의 느낌이 확실해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한다는 거죠. 그것도 아주 많이. 그렇지만 뭔가 great 하게 변할 걸 믿는다고 하죠.


감정 문제를 떠나서도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자들을 떠나보내면서요. 교사들은 제자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허전함으로 쳐다보면서 자신을 더 이상 기억해 주고 놀아주지(?) 않아도 예전에 그들의 곰돌이 푸우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고 그 추억만으로도 흐뭇해지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또 새로운 아이들에게 변함없는 푸우인거구요.


Toy Story 2(1999)를 보면서 그런 만남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아들 Andy에게 장난감이 망가졌을 때 당연한 듯 이런 말을 합니다.


I'm sorry, honey, but you know toys don't last forever.(미안하구나, 얘야. 그렇지만 있잖니 장난감은 영원하지 않단다)



이 영화에서는 박물관에 전시가 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인지, 아이가 커 버려서 더 이상 놀아주지 않고 기억하지 못하거나 망가지더라도 그 아이의 장난감으로 계속 남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 장난감들의 결론은 이 말이었습니다.


It'll be fun while it lasts.(재미있을 거야. 지속되는 동안에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그 영원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없구요. 그건 장난감뿐 아니라 인간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죠.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되든 지금 이 순간인 거죠. 후회를 남기지 않게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한 겁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네 가지 사랑』에서 진정한 교사의 사랑을 이렇게 언급합니다.

교사의 사랑은 모성애와 같이 주는 사랑이면서도 언제까지나 자신을 필요로 하기를 바랄 수 있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가르침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기 위함이고 교사의 목표는 자신을 필요 없도록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비평가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그 순간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떠나보낸 졸업한 학생들이 찾아올 때 허전함과 말 못 할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현실 속에서 교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더 이상 공유할 경험이 남아 있지 않은 현실과 그 시간의 흐름만큼 거리가 느껴지는 것이죠. 교사는 곰돌이 푸우처럼 그대로 남아 있지만, 학생은 로빈처럼 그렇게 마구 변해만 갑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교사의 기쁨일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곁에 있는 자신의 학생일 수는 없는 겁니다. 교사의 역할은 언제까지고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예전의 기억들을 다시 되돌려 주는 일뿐입니다.


그리고 교사의 노력과 사랑으로 인해 오늘의 그 제자가 그 모습으로 존재하고, 교사는 더 이상 현실 속에 영향을 주는 존재는 아닐 수 있지만, 그 영향이 그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음을 그리고 자신의 영향력 안에 놓이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성숙했음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떠나보낸 학생들을 언제까지고 애써 기억하며 가슴 한곳에 곱게 간직합니다.

영어로 ‘난 널 못 잊겠어’라고 하면

I can't forget you.가 아니고 I won't forget you.라고 합니다. 기억하고 잊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고 의지의 문제인 것이죠. 그냥 시간의 흐름에 맡기면 잊혀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기억할 수 있다면 그건 자신의 의지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가슴속에 묻어 두는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망설였던 이유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어떤 글에선가 나이가 들어서 졸업한 학생들을 그리워하는 한 교사의 심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죠. 그런 아픔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아픔으로 인해 사랑을 주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결국은 교사가 되었습니다.


Anthony Hopkins와 Debra Winger가 열연한 C.S. 루이스의 이야기를 다룬 실화 Shadowlands(1993)에서 두 사람의 이별 직전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We can't have the happiness of yesterday without the pain of today. That's the deal.

우리는 오늘의 고통 없이 어제의 행복을 가질 수 없어요. 그건 거래죠.


그렇게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지만, 그처럼 바보같이 또 아파할 것을 알면서 오늘 새롭게 주어진 만남에서 마음을 열고 사랑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보낸 그 자리에서 다시 또 다른 로빈의 곰돌이 푸우로 남아 있습니다. 비워진 그 자리는 새로운 로빈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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