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학생들에게 마지막 편지 그리고 작별

by 청블리쌤

(2020. 12. 30.)

오늘은 우리학교 학생들의 1학년 마지막 등교일이었다. 내게는 이 학교에서의 마지막 해에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대면하는 작별의 날이었다.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면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만나다가, 어쩌다 우연히 마주치지라도 않으면 평생 다시 볼 일이 없는 그 경계에 이르게 되는 날이었다.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난, 또 다시 떠난 뒤에 남겨진 쓸쓸한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떠나버린 빈자리를 채우기라도 할 정도로 마음속으로 난 하루 종일 울고 있었다. 며칠 후 이 학교의 마지막 출근을 하는 순간까지도 그 이후에도 당분간은 장마처럼 멈추지 않을 기세다.


몇몇 아이들은 정성스러운 손편지와 롤링페이퍼를 건넸다.

한 글자, 한 글자가 가슴 먹먹하다. 아이들이 꾹꾹 눌러 담은 그 마음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감정으로 편지를 읽으며 마음으로 힘겨운 작별을 하고 있는데, 이미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했던 두 명의 학생이 가던 발걸음을 돌려 벌써 보고 싶다고 내게 다시 찾아왔다. 교실로 그 아이들을 데려가자마자 아이들은 말 대신 눈물로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눈물이 많은 나지만, 그 순간에 아이들에게 눈물로 대답할 수 없어 어색한 말을 이어갔다.


떠나는 이를 두고 슬퍼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슬프지만 고맙고 감동스러운 일이다. 수업을 하면서 담임을 하면서 몰입하며 눈부시게 성장해가는 학생들을 통해 난 이미 나의 수고 이상의 보람과 축복을 누렸는데, 이렇게 전해지는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먹먹함이었다.


학생들과 훗날을 기약하며 돌아섰지만, 학생들도 나도 직감하고 있었다. 현실을 공유하지 않게 된 만남은 화석화된 추억과 현실 사이 그 어딘가의 어색함이라는 것... 그래서 새롭게 현실이 된 그곳에 집중하며 살아가게 될거라는 것을...


난 학생들에게 말한다. 행여 잊지 않겠다고, 앞으로도 연락하겠다고 약속처럼 던진 말의 무게를 느끼지 말라고... 연락하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을 거라고(실은 섭섭해하지 않으려 노력할 거라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니..

어떤 학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자신들이 연락 안 하면 그냥 섭섭해하셔야 한다고... 자기들은 계속 연락할 거니까... 결혼할 때도 초대할 거라고...

(실제로 문득 이전 학교에서 졸업식을 마치고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쓸쓸한 교정의 나를 찾아 멈추지 않는 눈물로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학생이 오버랩되었다. 대학교 졸업반인 그 학생은 여전히 별 일이 없으면 학기말이 될 때마다 나를 찾아온다.)


아래의 글은 현실과 추억의 경계에 늘 서게 되는 교사로서 그 느낌을 직감이라도 하듯이 반 학생들에게 남겨 준 편지글...



2020년도 1반 학생들에게 담임이 주는 마지막 편지

추억은 현실과의 단절입니다. 이제 곧 1년간의 지난 기억들이 화석처럼 추억으로 굳어진 후에는 남은 생애 동안 우리는, “현실이 아니라서 추억이 된” 그 순간들을 간직하며 살아갈 겁니다.


학년 초에 반강제적으로 우리 반 급훈을 ‘행복할 만큼만’으로 정하고 이렇게 세부사항을 편지로 전했는데 1년간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1. 공부도 능력껏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즐겁게 ...

2. 학교생활도 지치지 않고 생기 있게 영혼을 담아 의미를 부여하면서 ...

3.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나의 행복 이상으로 지켜주며 행복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

4.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성장 속도를 기뻐하면서 결국 도달하게 될 도착점에 설레며 ...

5. 그렇게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자기가 있어야 할 그곳에서 더불어 ...

6. 그리고 1년 후, 더 이상 1학년 1반일 수 없을 때에도 상처나 후회의 흔적 없이 딱 "행복할 만큼만"의 추억만 품에 안고 떠나길 바라며...


그리고 그다음 편지에서 이어지는 담임의 잔소리는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을 향한 당부이기도 합니다.


우린 지금 이 순간에만 누릴 수 있고 지금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것들을, 그 아름다움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거란다. 물론 나의 행복으로 남의 행복을 가려서도 안 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행복할 것이며, 그것도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는 반 친구들과 선생님과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더불어 행복할 것이며, 한 번씩 풍겨나는 꽃향기를 맡기 위해 잠시 멈춰 서는 여유를 가질 것이며... 그리고 나도 모르게 도달하게 된 그 도달점에 더 크게 기뻐하게 될 거다.


내가 방향은 알려주고 곁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면서 응원할 수는 있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건 여러분들만의 몫임을 잊지 않기를...


혹 담임으로서(이제 더 이상은 아니지만ㅠㅠ) 여러분들에게 바라고 시키는 여러 과정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더라도 여러분들을 향한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며, 당장 결과를 확인할 수는 없어도 바른길을 가고 있다는 신뢰와 확신을 잃지 않기를...


학교에서 수업을 하거나 온라인 수업을 하거나 우린 지금 스스로 성장해가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을 것이며, 때로는 본능에 충실하고 싶을 때에도 몸을 일으켜 본능을 거스르는 의미 있는 한 걸음의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침내 학교에서 대면하는 그 순간에도 그동안 충분히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잘 걸어왔다는 뿌듯함으로 새로운 환경에 이미 적응된 듯한 안정감과 확신이 넘치길... 어떤 변수에도 불확실함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도 나의 노력과 애씀의 정직한 결과를 믿으며, 행복의 가치를 믿으며 지내길.


1년을 돌아보니 여러분들 모두 서로의 행복을 지켜주며 각자의 자리에서 멈추지 않은 걸음으로 여기까지 와준 것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칭찬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찬란한 시절의 그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그저 기쁘고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아름답고 눈부신 성장을 더 이상은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없게 되었지만 여러분들 모두 행복할 만큼만의 아름다운 발걸음을 평생 이어가기를 기도하고 응원합니다.


2020년 여러분들의 담임이어서 행복했던 청블리쌤이


P.S. 여러분 책상 위의 선물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화이트데이 때 진작 전해주고 싶었던 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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