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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Jan 12. 2022

공감의 버튼 Pause

친구 교사가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의 의견은 이러했습니다.



예수님이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기 전과 후에 땅에다 뭔가를 쓰시면서 기다리는 것처럼 하는 것이 비결인 것 같아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할 시간을, 상대방도 나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는 어색함과 같은 긴장감이 내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에 몰입하는 것을 도와주는 거죠. 그 시간은 반드시 길 필요는 없구요. 심호흡하듯 잠시 멈췄다가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일종의 pause 버튼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바로 반응하면 내 생각과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고, 잠시라도 기다린다면 실은 내 생각이 소위 contaminated될 기회가 되는 것이죠. 좋은 의미로요... 공감은 나의 생각의 순수성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공감능력이 모든 경우에 무조건 옳다고 할 수도 없고 모두의 공감능력을 표준화시켜 제시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마다 공감에 능한 기질의 차이도 있고, 살아온 배경이 공감 발휘의 변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공감은 나만의 생각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그들에 대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필요한 것이죠. 그럴 때마다 저는 예수님의 공백 같은 기다림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생각과 입장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도 100% 이해 받기를 기대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 찰나 같은 순간의 멈춤 버튼은 공감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효과 여부를 떠나서 상대에게도 비슷한 종류의 기회를 부여하며, 적어도 상대의 생각을 헤아리려 애쓰고 있다는 진심이 전달되기도 합니다.


어쩌다 보니 친구나 후배의 아이들 상담이나 부모 상담도 한 번씩 하게 됩니다. 그 친구 교사는 제게 학생멘토링처럼 부모멘토링 중이라며 부추겨세웠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학부모 멘토링이라니요. 그저 경험을 나누는 것이죠. 제가 뭔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거나 변화를 일으키는 전문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학생들도 제 역할에 선을 긋고 최소화시켜야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과 동력을 더 얻게 되는 것처럼.. 전 그저 second opinion 제시하는 느낌으로 기회 될 때마다 부담 없이 떠드는 거예요. 그런데도 선생님처럼 귀를 기울여주시는 분이 계시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지난 번 포스팅에도 소개했던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말씀이 또 떠오릅니다.



내 삶에 변화를 가져다 준 이들은 누구인가? 나를 변화시키려 애쓰지 않았던 이들이다.


변화시키려 애쓰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공감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상황인 겁니다. 이해하고 기다려줄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고, 공백이라는 소중함과 성장통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것이지요.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애쓰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즉 공감은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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