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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친정을 가다... 소중한 의미 부여

by 청블리쌤

그리움의 흔적을 따라가고 싶었다. 한때는 일상이었으나 지금은 생각속에만 존재하며 실체가 사라지는...


학교행사가 있던 날 오후...

그 전날 불쑥 찾아갈 용기가 없어서, 편하게 지내는 작년 기획쌤께 다음 날 방문하면 민폐가 될지 물었었다. 대놓고 "민폐니까 오지 말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니 답은 이미 정해진 질문이었지만..

예상대로 쌤은 “쌍수 들어 환영”이라고 해주셨다.

망설임이 필요 없다고 용기를 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마법의 문구였다.


행사 마치고 다들 각자의 자유 시간과 오랜만의 여유를 누린다는 현 학교 담임쌤들의 대화 중에 친정에 간다고 하니... 가면 반겨주냐고 누군가 물었다. 왠지 발끈할 정도로 내겐 믿음이 있었다. 내 존재의 특별함이 아니라 직전 학교 선생님들의 누구라도 환대하시는 다정함과 친절함에 대한 확신이었다.


친한 선생님께 물었다. 친정에 가는데 뭘 사 가야 하겠냐고..

그러니까 내게 목적이 있어 가는 거냐고 해서 그렇지 않다니까..

사 가셔야겠네요.

지하철에 내려서 스테비아 방울토마토 2팩, 딸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직전 학교에 더 이상 그 학교 소속이 아닌 나를, 엄밀하게 말하면 무단침입이었는데...

일상인 것처럼 복도에서 마주치던 선생님들은 기억 속의 그 모습대로 편하게 내게 인사를 하셨다. 그러다가 일상이 아니라는 것을 갑자기 깨달으신 듯 깜짝 놀라시며 놀라움만큼 날 반겨주셨다.

한 달 전에 대면했던 작년 3학년 담임쌤들도 그 한 달이 매우 길고 먼 시간이라도 한 듯 환영해 주셨다. 선생님들의 일상을 깨뜨리는 방문이었음에도 기꺼이 시간과 에너지를 나눠주신 선생님들을 뵈면서 미안함과 감사함이 교차했다.


다음 번 작년 담임쌤들 모임은 우리 학교 근처에서 하자고 기획쌤이 그러셨다. 학교에도 방문해서 시집에서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자꾸 친정에 오게 하지 말라는 말도 하고 와야겠다며 모두들 웃으셨다. 정말 그랬다. 작년에 떠나기 직전에 더 좋은 혼처를 알아보듯, 지금 학교보다 더 좋은 학교가 아니면 안 보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셨고, 가서도 행복하게 잘 지내는지를 무척 챙겨주셨던 쌤들의 진심이 다시 느껴져 뭉클해졌다.


4년간 다니던 지하철과 학교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몇 달 지났다고 낯설게 느껴졌다. 적어도 생생함으로는 떠올릴 수 없게된 망각의 처리 과정을 체험한 듯했다.

학교에 그리운 선생님들과 4년간 떠나보낸 학생들과의 추억이 곳곳에 서려있었지만, 정작 졸업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학생들의 부재는 낯설음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1학년 때 자유주제 선택으로 잠시 만났던 2, 3학년 학생들 몇몇이 나를 마주치고 놀라면서 “청블리쌤”을 외쳤다. 찡해졌다. 정식으로 가르친 학생도 아닌데 나는 잊히지 않고 그들의 기억에 아직 살아남았다.

그 이야기를 기획쌤께 하면서 이름이었다면 기억되지 못했을 텐데 “청블리”라는 별명으로 각인시켜서, 그것도 별명의 ‘인지부조화’로 인해 잊히지 않는 것 같다고 하니 바로 알아듣고 웃으셨다. 쌤도 별명에서 ‘인지부조화’를 느끼고 계셨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뛰어난 문해력 때문인지. 둘 다인 듯 하지만, 후자라고 믿고 싶었다ㅋㅋ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학교 행사가 근처에서 있었냐는 반응이 많았다. 가까운 데 온 김에 학교에 방문해야 납득이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지도 않는데 이렇게 아무 목적도 없이 친정을 오는 건 설득되지 않는 행위였을 수도. 그냥 가볍게 들고 온 과일로도 납득할 수 없는.

그런데 나를 유독 반갑게 맞아주셨던 두 분의 누님 선생님들께서 마치 미리 기획이라도 하신 것처럼 내게 그 목적을 살려주시고 의미를 부여해 주셨다.

마침 마지막 수업 시간에 각자의 담임 학반에 수업이 있으신데, 내게 즉흥적으로 예비고1 학생들에게 필요한 학습방향 특강을 부탁하셨다. 20분 정도 릴레이로 하면 되겠다고 갑작스러운 계획의 퍼즐을 맞추셨다.

실은 기회가 있으면 그럴 수 있는 가능성도 상상하고 있었고, 4년간 그 학교에서 중3 대상으로 늘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했었으니 전혀 당황함이 없었고, 마냥 기뻤다. 선생님들 담임 학반에 대한 애정과 나에 대한 신뢰가 아니면 성사될 수 없을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넉넉하게 전달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고, 시각자료가 준비되지 않았으며, 짧은 시간으로는 재미를 가미할 수 없는 걱정만 있을 뿐 그렇게 학생들을 만날 기회에 설레고 감사했다.

특히 내가 유예해서 학교에 남았다면 수업으로 만날 뻔한 비껴간 운명의 학생들이라서 나 홀로 마음이 더 애틋해졌다.

다른 선생님들은 특정 반만 그러지 말고 전체 방송으로 해야 한다고, 시청각실에 모으자고 하다가...

아예 날을 잡아서 학기별로 특강을 하자고.. 의견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2학기에 수능 끝나고, 여기도 중3 기말고사 끝나는 그 시기에 시간을 마련해 주시면 기꺼이 달려오겠다고 여지를 남겨드렸다.

떠난 자에 대한 예우 같은 신뢰의 말씀에 가슴 벅찼다.


교실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만났다.

고3 학생들과 수업하고 상담하면서 느끼는 현실의 높은 벽을 일상으로 마주하며 다시 돌아와서 만난 예비 고1들에게는 그 희망의 크기만큼 현실의 벽도 높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준비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면 그 벽도 차츰 높아질 터였다.

4년 전 중학교 발령을 받으며 애써 그런 희망을 품었었는데 절실하지 않으려 하는 중학생들의 해맑음에 혼자 무력감을 느끼며 힘겨워서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었었는데...

다시 중3 학생들을 보니 엄청난 희망의 기회를 다시 느끼고 내가 다 설렜다. 나의 한두 마디의 말이 그들이 희망의 크기를 이어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그들에게 그 희망을 간결하게 이야기했다. 특히 열심히 해보고 싶은데 아직 방향을 몰라서 학원에만 몸을 맡기고 있는 열심을 품은 학생들이 내 말에 경청하는 듯했다. 아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내 말에 다 경청했다.


계획한 일정과 방문은 아니었지만... 그 일상 같은 마주침조차도 너무 반갑고 정겨웠다.

실은 전날에 왕복 3시간 걸려서 나를 단 5분 마주하고 가서도 뵈어서 너무 좋았고 기뻤고 행복했다는 작년 졸업생들의 방문과, 소감이 담긴 문자에 용기를 낸 것일 수도 있었다.

스쳐 지나가듯 짧은 순간이라도 대면할 수 있다는 반가움은 망각의 경계에서 그리움의 실체를 다시 마주하는 일이고,

평행이론처럼 각기 다른 세상을 살다가도 그 세계가 마주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일 거라는 거창한 상상으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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